일생이 고독했던 그의 인생, 이제는 전 세계인이 아는 예술가가 되기까지
어? 이거 반 고흐 작품 이잖아
요즘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얼굴과 그림만 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인데요. 그의 세필 풋으로 그린 섬세한 터치와 비극적인 삶은 강렬하게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많은 수식어들이 그를 따라다니고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주로 비극적인 이유로 기억을 합니다.
37세에 요절한 화가 (실제 반 고흐는 27세부터 그림을 그려 10년 동안 그림을 그렸음)
자살로 생을 마친 화가
전 생애 그림을 단 1점밖에 팔지 못한 화가 (그것도 친구의 여동생에게 팔았지요)
생활비가 없어 동생에게 생활비를 받아 연명한 화가
현재 그림의 가치는 200억 원에 호가하는 화가
아마 반 고흐가 죽을 당시에 그의 그림을 모두 팔아도 가구 몇 점 밖에 못 받았을 거라고 하는데요.
이번에 그를 주제로 그의 화풍을 이용해 10여 년의 기간 동안 만든 영화 '러빙 빈센트'도 개봉을 했지요.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그를 사랑하게 된 걸까요?
이번 추석 연휴를 이용해 저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빈센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박물관에서 보내는 시간 속에서 왜 그가 그토록 저에게 가깝게 느껴졌던 사람인지 몇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대단한 포인트는 아니었습니다. 크게 다섯 가지로 생각해 보았는데요.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반 고흐는 미술을 시작한 이래 동생의 돈으로 겨우 의식주를 해결하며 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모델을 구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모델을 구하기 위해선 모델에게 합당한 비용을 지불했어야 했지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얼굴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정에 따라 사물을 다른 색체의 조합으로 다채롭게 표현하는 그의 기법을 그의 얼굴을 그리며 표현하는 방식은 그의 궁핍한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정서 상황에 따라 자신의 표현 방식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것을 보면서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단순한 한 명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생각이 녹아있는 그림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멋진 풍경과 신화를 그리는 그림과 다르게 작가 자신을 그린 그림 속에서 우리들은 그의 얼굴과 눈빛 앞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슬프지만 친근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는 평생 마음을 터 놓고 자신의 생각을 나눌 친구가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화가 같지도 않은 실패자이자 가난뱅이, 주정뱅이로 취급받았습니다. 섬세한 그의 성격은 어찌 보면 날카롭고 예민하여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으로까지 보이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는 영혼의 단짝이자 동생이었던 테오에게 편지를 많이 씁니다.
전문 미술상으로써 미술계에 종사하는 동생과의 교감은 그는 즐거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편지에서는 자신의 현재 상황과 작은 소소한 기쁨을 모두 세세히 동생에게 털어놓습니다. 자신이 왜 이 그림을 그렸으며, 그 그림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녹아 있는지 말이지요. 쓸쓸히 방 안에서 써 내려간 그의 편지는 어쩌면 그만큼 대화하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련함도 있습니다.
오히려 외롭고 고독했던 그의 삶 속에서 정직하고 많은 기록들은 후대에 소통의 연결 창구로 이어집니다. 우리 주변 예술가들을 통틀어 가장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그의 고뇌를 알게 되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1 작품에 1개 이상의 편지로 이제는 우리들에게 친절히 작가가 직접 이야기를 해주는 목소리로 들립니다.
반 고흐의 그림을 떠올려 보면 그의 그림은 금세 떠오릅니다. 일반 정물화와 다른 그의 기법은 강렬하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꽂힙니다. 요즘에 봐도 그의 그림은 잊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개성이 강합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시대가 지나도 신선하게 느끼며 사랑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그의 그림은 괴이한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물을 보고 느끼는 색채 그대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 사물을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그 사물의 특성상 고유의 색채 외 다른 색체와 만나 표현되는 것이 분명 있다고 믿었습니다.
갈대, 연필, 목탄 등 다양한 미술도구들을 가지고 종합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시도를 했습니다. 오히려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고 투박하게 시작한 그의 예술에 대한 세계관은 그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배운 그림 기술은 더더욱 그의 예술 세계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일반 사람들의 삶을 좋아했습니다. 멋있고 화려한 소재를 그리는 다른 그림과 달리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특별한 점들이 있습니다. 창녀, 군인, 농민, 농촌, 오두막집, 농지 등의 그림을 그는 표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신화를 그리는 다른 그림들과 달리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편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정돈되어 있는 멋진 모습을 그림에 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마감한 뒤 지친 모습, 투박한 손, 그리고 헤져있는 옷 등의 표현이야 말로 열심히 노동한 뒤의 그들의 진정한 아름다운 모습이기에 이를 담으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밀레의 "만종"과 같은 작품을 상당히 좋아했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동생에게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친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느껴집니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환경 속에서 멋진 모습보다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스스로도 위로를 받는 듯한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작품과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반 고흐 미술관에 가면 됩니다. 그의 모든 이야기와 습작, 작품들은 그 공간 속에서 상당히 짜임새 있게 하나 빠트릴 것 없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다 보면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고가인 그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미술관을 걷다 보면 그의 일생을 함께 지내며 그의 고뇌를 함께 느끼게 됩니다.
슬프면서 고통스러운 그의 말년 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10년 이상 그를 유일하게 화가로 인정하며 그의 희로애락을 함께 편지로 나누었던 미술상 동생 테오 또한 형의 부재에 대한 슬픔 때문인지 고흐의 죽음 6개월 뒤 죽게 됩니다. 그가 평생 그린 수많은 그림들과 편지들은 동생 테오에게 가게 되었지요.
사별한 테오의 아내와 그의 아들은 반 고흐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세상에 알리고자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 빈센트의 작품을 대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반 고흐 미술관의 설립과 함께 그의 작품을 기증하게 되지요. 테오가 소장한 작품은 회화 200여 점, 데생 500여 점으로 총 700여 점의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편지와 함께 기증, 편지의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게 됩니다.
미술상이었던 테오의 다른 인상파 작품과 함께 만들어진 빈센트 박물관은 당시 시대의 미술사조를 알차게 보여주며 그 속에서 고뇌한 반 고흐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반 고흐 미술관은 작지만 유럽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미술관이 되었지요.
너무나 외롭고 힘든 그의 삶이었지만, 그의 죽음 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외로웠기에 편지를 썼고, 모델비가 없었기에 자신을 그렸던 화가는 오히려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의 생각을 공감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풍파가 많았던 그의 삶은 일상 속에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삶 자체로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화가입니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어떤 말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당신이 고독하게 불태웠던 그 열정들과 방향은 후세에 찬란히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요?
SF 영국 드라마 닥터 후 시즌5 10화 '빈센트 반 고흐' 편에서 후대 시대로 온 반 고흐가 자신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에피소드를 포함한 고흐 편을 만들었는데요. 이 영상을 마지막으로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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