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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로 May 04. 2020

이심진심 (以心眞心)

©  2020 Roh.

  처음은 늘 힘들다. 의대생에게 첫 임상 실습도 그렇다. 텍스트를 벗어나 처음으로 환자를 실제로 마주한다. 초등학교 때 엄마 손을 놓고 가던 첫 등교길이 차라리 나았다. ‘학생이라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걸 들키지 않을까?, 나 때문에 환자가 나빠지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머릿속이 어지럽다. 특히 정신과 실습은 가장 피하고 싶은 과정이었다. 정신과 병동은 의대생에게도 미지의 공간이다. 여기 입원한 정신과 환자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실습 전날밤 꿈자리가 흉흉했다.


  실습이 시작되면, 교수와 전공의가 늘 뒤에 있으니 편하게 환자를 대하라 한다. 이 말은 의대에서 가장 공허한 약속 중 하나이다. 환자와의 면담은 환자와 나 둘 밖에 없는 실존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바심 내는 실습 조 친구들에게 ‘사람이 다 똑같지 뭐.’라며 짐짓 여유를 부려 보았다. 하지만, 정신과 진료에서 말 한마디는 수술의 메스와 같다 했다. 무심코 던진 말이 곪은 부위를 째는 게 아니라, 아픈 상처를 더 후벼 파지는 않을까하는 염려를 차마 떨칠 수 없었다.


  2주 간 면담할 환자를 배정 받았다. 대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나 여자 환자보다는 낫겠지 했다. 대학 선배처럼 친근하게 대하려는 마음으로 환자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가 쓰디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의 첫인상은 참 어두웠다. 암울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피부도 까무잡잡했고, 딱딱하게 굳은 한가지 표정 뿐 이었다. 머리 위에는 먹구름이 둥둥 떠 있었고, 젖은 솜처럼 웅크린 모습이었다. 그는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지못해 면담에 임하는 듯 했으나, 목소리 조차 듣기 어려웠다. 나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콧등만 보이도록 떨군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기만 할 뿐이었다. 첫 만남이라 낯을 많이 가려서인가보다 했다.


  하지만 이튿날도, 셋째 날도 면담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대입 실패 후 기대가 컸던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고,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 입원했다는 게 몇일 동안 얻어낸 정보의 거의 전부였다. 소설 한편에 필적한 인생사를 환자 별로 줄줄 꿰고 있는 전공의들이 얼마나 뛰어난 이들인가 경외감을 느꼈다. 날이 갈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정신과 자체가 나랑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자주 보면 친해지고, 친해지면 할말이 늘어나는 법이다. 그래서 무모한 성실함을 무기로 매일매일 면담을 이어갔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그가 면담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2주 째가 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긴 시간 침묵만 흘렀다. 자주 봤으나 친해지지 않았고, 나만 친해지려 하니 나 혼자 말하고 있었다. 긴 적막을 채우려고 꺼낸 말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달팠던 대입 수험 생활, 서먹한 아버지와 대화하는 법, 나만의 기분전환하는 요령 등 두서없이 내 이야기를 건냈던 것 같다. 실습이 끝나가도록 면담은 발전이 없이 제자리였다. 전보다 조금 더 눈을 맞추기는 했으나, 대화라기보다는 긴 침묵과 간헐적인 나의 사설(辭說)이 교차되기 일쑤였다. 담당 교수님도 나름 열심인 내가 애처로운 듯, 우울증의 뿌리가 깊으니 실망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셨다. 하지만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정신과 면담은 애초에 이런 식이 아니었다. 환자는 자신의 깊은 속내를 술술 고백해야만 했고, 치료자의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에 울음을 터뜨려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식 치료자가 아닌 실습생이라 해도, 면담의 성과가 이 정도 밖에 안된다면 상담가로서의 재능은 없는 셈이었다. 내 어깨도 물먹은 솜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보내던 실습의 마지막 날 점심 때였다.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인턴 선생님 몇명이 갑자기 찾아왔다. “실습생들 중에 OOO 학생 있나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쭈볏거리며 손을 들었다. “역시 학생이었네? 누군가 착각했나봐요. 이달의 친절인턴으로 추천되었어요.“ 무슨 일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자칭 동안이라더니 인턴 취급을 받았다며 놀려대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내가 누구한테 친절했고, 누가 나를 친절하다 추천했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환자일 리는 없었다. 그는 내게 대답 없는 벽이자, 볕을 내주지 않는 먹구름이 아니었던가?


  의아한 마음으로 환자를 찾았다. 그는 담담히 자신이 추천한 게 맞다고 했다. 나는 고맙지만 좀 놀랐다고 말하면서 내가 보기보다는 젊다고 덧붙였다.

나는 물었다. “왜 그렇게 하셨어요?”

그가 대답했다. “그냥… 고마워서요.”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소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악수하듯 환자의 손을 잡았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나를 떠올려줘서, 그리고 면담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 반복했다. 실습이 끝났다며 그의 쾌유를 기원하며 작별 인사를 건냈다. 방을 나서고 있는데, 어머니가 황급히 따라 나오더니 내게 보라색 메모지 한 장을 건냈다.

“아이가 꼭 전해주라고 하네요.” 메모엔 짧은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잊지 않을께요.’

그 순간, 메모를 쥔 손이 훅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 생애 가장 무거운 여섯 글자였다.

 



  실습 기간 내내 어수룩했던 의대생은, 이제 정신과 의사가 되어 매일 환자를 만나고 있다. 아직도 가끔 첫 실습 때 일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가 마지막까지 잘 회복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입원 환경에서 안정을 찾고 있었고, 전문적인 상담과 약물의 도움으로 점차 호전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학생인 나로서는 그의 반응이 갑작스럽게 느껴졌지만, 그간의 변화를 눈치챌 정도로 민감하지 못했던 탓이다. 다만 내가 가진 건 진심 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전하고 싶었고, 무엇으로든 희망을 주고 싶었다. 정신과 수련을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진심만으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고통받는 이에게 치료자의 진심이 갖는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혼돈 속에 있는 사람에게, 그 무엇도 진심을 담아 반응하고 공감해주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주변에서는 내가 심리 전문가이기에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것이라 믿는 듯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여전히 진심을 전하는 데 서투르며, 별로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진심이기에 가까스로 상대의 마음에 닿을 뿐이다.


  늘 죽음을 생각하는 환자가 오늘도 진료실에 왔다. 그녀는 무심히 내뱉 듯 말을 꺼냈다.

“저는 오늘 사라져도 괜찮아요. 아쉬울 게 없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가족들이야 잠깐 슬퍼하다 말 거에요. 친구들도 마찬가지에요.”

“적어도 누군가는 안타까워하지 않을까요?”

“아무도 없어요. 누구도 기억 못할 테니까요.”

그 깊은 절망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작은 침묵을 깨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도 당신을 잃고 애통해 할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 존재한다면요. 저는 반드시 그 중 한 명일 겁니다.”

그녀는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녀의 고통에 진실로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여기에 티끌만큼이라도 매너리즘이 섞이는 순간, 무서운 상상은 다음과 같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내가 비용을 지불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잖아요?’ 라거나, ‘제 기분에 맞추려고 배운대로 할 뿐이에요.’ 혹은,

‘당신도 사실은 제게 관심이 없어요.’ 라고 반응 할 수도 있다. 

상처 입은 환자는 치료자보다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다. 진심은 통한다고들 하지만 진심이어야 통한다.

   

  진심을 건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초보 실습생이었던 나는 외면 받고 초라해질까 두려웠다. 가장 서툴지만 가장 순수하게 마음을 다했던 시절이다. 돌이켜보면 나보다 환자였던 그가 훨씬 더 많은 용기를 내었음이 분명하다. 의대생과 내키지 않는 면담에 응할 때에도, 추천함에 사유서를 적어 넣을 때에도, 어머니를 통해 수줍게 메모를 건넬 때에도 그로서는 안간힘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지금까지 이 길에 와 서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없다. 용기를 낸 진심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TS 엘리어트는 “끝이 시작이며, 끝은 곧 출발점이다.”라고 했다. 그와의 만남은 이런 삶의 아이러니에 닿아 있다. 그가 삶의 끝을 생각했기에 나는 병동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만남이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출발점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도움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다면, 그의 삶의 끝과 이어지는 셈이다. 그 시작과 끝,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 역시 진심이다.


매 순간 진심을 다하며 사는 일은 고단하다.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한 이후로 나의 바램은 한결같다.

단 한 명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환자가 없기를.


한 잎, 두 잎 꽃잎이 소슬하게 떨어진다.

그의 안부가 궁금하다.

아버지와 화해했을까?

삶의 빛나는 순간을 맞이했을까?

그냥 잘 버티고 있을까?


언젠가 방법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고마웠다고.

그리고,

나도 잊지 않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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