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 한 가지
일상에서 그림 같은 사람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의복 문화가 자유분방한 미국에서라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간색 옷을 권하는 사회, 너무 튀면 안 된다.
누구든 '이 사람 뭐지?' 하며 당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심 많은 정신과 의사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유니크한 옷을 소개하는 패션모델인가?
방송을 마치고 채 환복을 못한 방송인인가?
독특한 패션감각을 가진 예술가인가?
타인의 관심을 즐기는 연극성 성격의 특질이 있나?
혹은, 조증 상태로 접어든 조울병 환자는 아닐까?
실은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의 모습이다.
자폐증을 앓는 딸의 행동조절 문제로 상담을 받곤 했다.
그녀는 진료 때마다 독특한 의상과 머리 색깔로 나를 놀라게 했다.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특별할 것은 없었다.
주목받기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요, 들뜬 기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녀를 걱정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진료에 있어 중요한 부분은 아니기에 보호자의 외모에 대해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매번 현란한 색감과 도드라진 무늬의 옷, 그리고 비비드한 칼라의 염색 머리를 고집하는지 이해하는 어려웠다.
본인만의 패션 철학이 있다고 해도, 타인의 시선에 너무 무감각한 건 아닌지 우려도 들었다.
환아를 데리고 너무 눈에 띄는 차림으로 외출하는 점도 솔직히 탐탁치 않았다.
어느 날, 나는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옷이나 머리 색깔이 늘 좀 독특하신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 대답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이가 밖에 나오면 워낙 제멋대로 다녀서요. 사람 많은 데서도 엄마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려고요."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의 어설픈 짐작과 섣부른 판단은 모두 빗나갔다.
보호자는 지극히 아이만을 생각하는, '아이의 시선에 너무 유감각한' 엄마였을 뿐이다.
현란한 색상의 옷은 오히려 아이를 흥분시키거나 산만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굳이 아는 체를 했다.
부끄러워서였다.
이런 일이 진료실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환자를 파악할 때, 지레짐작과 조급한 판단은 모두 금물이다.
직업의 특성 상 너무 주저해도 안되지만, 어쭙잖은 경험과 설익은 지식을 과신하면 더 문제다.
우리의 판단이란 게 경험의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뇌가 많은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범주화와 편견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여러 사람들의 '인사이드 아웃'을 하다보면, 작은 확신을 갖게 된다.
'세상은 넓고, (할일보다 하기 싫은 일이 많으며), 사람은 어마무시하게 다양하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 한 가지를 말하라면 다음과 같다.
'온전히 이해하기 전에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적어도 사람에 대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