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인턴 시절, 퀵 스케치
응급실에서 새벽에 본 꼬마다.
아빠 어깨에 매달려 툭하면 울어싸던 녀석이다.
볼륨감 넘치는 앞뒤 짱구머리에,
통통한 양볼은 그려진 것보다 훨씬 두툼했다.
도발적인 귀여움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슬쩍 볼을 꼬집 꼬집했다.
아빠의 배는 아이의 볼보다 훨씬 더 두툼했다.
1시간 뒤 응급실로 신환이 들어왔다.
양쪽으로 부워오른(?) 통통한 볼을 보고는
‘살짝만 꼬집어 줘야지' 하며 다가서는 찰나,
나를 보는 날카로운 경계의 눈빛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볼거리에 걸린, 여드름 송송 오르기 시작한 13살 남아... 아니 남환이었다.
ps. 응급의학 인턴 인계장 모퉁이 여백 with BIC 유성 볼펜 (featuring 볼펜 똥)
15년 전, 인턴 시절 스케치와 글이다.
인계장에 그린 걸 보니, 응급실 턴 초반이었으리라.
본능적으로 펜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내게 이런 볼 통통한 아이는 치명적이다.
충분히 사랑 받고 있기에 (부모 뿐 아니라 나에게도)아이는 울면서도 시종일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요즘 저런 볼꼬집는 행동을 했다간 큰일난다.
귀여워하는 마음만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