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시대, 정신과 진료
근래의 정신과 진료실 풍경은 낯설다.
연일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요즘 나의 진료를 '눈빛 진료'라 부르려 한다.
진료실의 두 사람은 코 윗 등까지 마스크를 꼭 끌어올리고 마주 앉는다.
나는 눈만 보면서 환자를 파악하고,
환자는 (답답하게도) 나의 작은 눈만 보며 상담을 받는다.
가끔 갑갑해서 마스크를 벗고 있을 때면,
“선생님은 마스크 안 쓰시나요?”라며 나의 허술한 방역 의식을 지적하기도 한다.
눈이라는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집중도만 따진다면,
요즘은 감히 안과의사와 겨룰 만 하다.
사람이 만났는데 서로 얼굴 보는 게 대수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정신과에서 가장 중요한 진료행위 중 하나이다.
얼굴 대부분을 가린 환자의 정서 상태를 파악하기란 만만치 않다.
청진기 없이 맥만 짚으며 심박음을 파악하라는 것과 비슷하다.
흔히 '눈빛으로 통한다' 하지만 눈빛 만으로 진료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서로를 알아보는 게 신기하고 다행이다.
인간의 눈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지 실감한다.
눈의 흰자위가 외부로 드러난 동물은 사람 뿐이다.
그 덕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소통할 수 있다.
만사 그렇듯이, 이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마스크 덕에 다소 뻔뻔해 질 수 있어 좋다.
면도를 좀 대충 해도 되고, 점심식사 후 “이~”하며 거울을 볼 필요도 없다.
가끔 당 충전이 필요할 땐, 슬쩍 사탕을 물기도 한다.
그러나 평소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도 모르게 손이나 어깨를 쓰는 몸짓이 커진다.
온갖 메세지를 꾹꾹 담은 눈빛으로 환자를 본다. (차라리 눈빛을 쏘는 것에 가깝다.)
웃을 때도 더 활짝 웃어야 휘어진 눈매로 웃어 보일 수 있다.
연애시절, 눈웃음을 좀 더 단련했어야 했다.
마스크를 쓰니 자연스레 말 수도 줄어든다.
나도 요점만 말하고, 환자들도 꼭 필요한 질문만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료가 크게 힘들지 않다.
이 부분에서 좀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동안 쓸데 없는 말이 많았던 걸까?
좀 더 정제된 대화가 필요했었나?
환자가 원했던 건, 나의 세심한 면담보다는 처방전일 뿐이라는 슬픈 진실일까?
눈빛으로 하는 말이 이해가 쉽다.
입으로 하는 말보다 더 솔직하고 정확하다.
진료 시 핸디캡으로 선글라스와 마스크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의 선택은 마스크이다.
조용하지만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지금의 ‘눈빛 진료’는 당분간 계속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