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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로 Nov 01. 2020

퀸이 건네는 위로, '보헤미안 랩소디'

정신과 의사가 본 프레디 머큐리의 삶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물의 표본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아티스트 © 2020 Roh.

이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 하나가 한국에 내린 첫걸음이었다.

그들의 공연에 빈자리를 내보이니!

 잠실 종합운동장의 관람석이 이 빠진 옥수수처럼 듬성듬성했다.

프레디도 없고 존도 못 왔다 해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전설들을 이렇게 맞이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지난 2014년 퀸의 첫 내한공연 때였다.

친구들과 두 팔 벌려 열렬히 라디오 가가를 떼창 했지만, 그들을 제대로 환대하지 못한 것 같아 서글펐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란 영화 덕분에 천만에 육박한 사람들이 퀸의 일대기를 접한 셈이다.

사실 영화는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퀸의 오랜 덕후 입장에서는 이미 아는 이야기였다.

다만, 영화의 거대한 흥행 덕에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나 할까?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보컬이 누구인지,

장르를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버라이어티한 음악적 시도를 하고,

역사상 최고의 공연을 선보인 밴드가 누구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첨언을 하자면, 퀸은 역대 가장 균형 잡힌 멤버 구성을 자랑한다.

멤버 전원이 차트 1위 곡을 작곡하고, 멤버 모두 작곡가 명예의 전당(Songwriters' Hall of Fame)에 헌액된 최초의 밴드이다.


이 영화는 퀸의 오랜 팬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하드 락의 순수성만이 절대 시 되었던 그 시절,

남학교 ‘음덕’ 무리들 사이에서 정통 헤비메탈이 아닌,

잡탕 음악을 하는 ‘퀸’을 옹호하기란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말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 해졌다.

여전히 촌스럽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받는 음악은 어느 쪽인가?

이 영화는 사춘기 시절, 우악스러운 다수에게 억눌려왔던 퀸 덕후에게 건네는 위안이다.
2011년 25만 원에 구입한, 퀸의 크리스털 케이스 한정판 리마스터링 전집 앨범이 애틋하고 자랑스럽다.

2020년 1월 18일, 노년의 거장들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2만 5천 여명의 관객들이 고척 스카이돔의 스탠딩석과 관람석에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6년 전 서글픈 기억을 말끔히 지울 수 있었다.

오랜 애정을 표출하며, 다시 돌아온 그들을 아낌없이 예우했다.




만나보지 못한 인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바, 슈퍼스타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적지 않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탐색 경력 30년 정도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프레디 머큐리는 극단의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다.

거만하고 숭배를 요구하며 외향적인 듯 하지만, 실은 무척 여리고 다정하며 내성적이다.

감각추구(sensation seeking)적이며 충동적으로 보이나, 메리 오스틴처럼 조용한 사람들과 진지하고 오랜 관계를 유지했다.

여성과 오랜 기간 동거를 했지만, 동성 연인과 함께 마지막을 맞이했다.

대개 한쪽 특성이 우세하기 마련이나, 한 개인이 이런 양 극단의 기질을 균등하게 갖기는 쉽지 않다.

어린 시절 양육환경이 불우했거나, 큰 트라우마를 겪었다면 모를까, 오히려 가정환경은 좋은 편이었다. (영화에서의 가부장적 아버지는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수준이다.)

문헌에 따르면, 에이즈 진단을 받기 전까지 그는 정체성 혼동(identify confusion)과 열등감 (inferiority), 그리고 친밀감 (intimacy) 문제를 해결하느라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주 1)

이런 부분이 예술적 성취의 드라이브가 되기도 하고,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자 매력으로 비칠 수 있다.

반면, 이 때문에 스스로는 충분히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프레디 머큐리는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표본과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면만 보고 함부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는 정신과 진료실에서 매일 무겁게 느낀다.

단 몇 줄의 진단서가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작성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한 개인의 정신적인 상태를, 몇 번의 면담과 몇 가지 검사만으로 쉽게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충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내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그의 말년의 삶이었다.

아쉽게도 이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에이즈 진단 이후 그의 삶이야말로 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숭고한 여정을 보여준다.

절망하며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우울증에 빠졌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에게 한정된 시간을 인지하며, 삶이라는 촛불의 마지막 심지 끝까지 불태웠다.

누군가 에이즈가 예술가에게 가장 큰 축복이라고 했다면, 그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가 멤버들에게 했던 말은 놀랍다.

“내겐 이제 시간이 없어. 나머지는 너희들에게 맡길 테니 우선 계속 녹음해두어야 해.”

그가 평생 힘겨워했던 역할 혼동 (role confusion)의 문제는 진정한 통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뮤비(https://youtu.be/oB4K0scMysc) 를 볼 때면 늘 가슴이 찡하다.

'그래도 나쁜 일은 별로 없었다.'는 유언 같은 가사,

웃으며 덤덤하게 'I still love you' 라고 말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심장박동 소리 같은 퍼커션 소리의 여운.  


나는 속편을 열망한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이후이기 때문이다.

절망을 극복하고 남은 생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위대한 아티스트로서의 프레디 머큐리가 온전히 담겨있기를 고대한다.

게다가 속편이 개봉되면, 퀸을 한번 더 볼 수 있을 테니까.


주 1) Paul J.P. Fouché, et al., The Journal of Psychohistory 46 (1) Summer 2018

https://youtu.be/eg0z7DnfQ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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