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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로 Sep 14. 2020

새똥과 전쟁: 반격의 서막

바보인 척하는 스마트한 생명체와의 대결

속도의 차이가 있다. © 2020 Roh.

새대가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새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스마일센터에 출근한다.

이곳은 독채로 된 3층짜리 건물에 있다.

건물은 연식이 꽤 되어 곳곳에 손이 간다.

최근 센터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노후된 외벽이나, 녹슨 상하수도관이 아니다.

바로 조류의 분변, 간단히 말해 새똥이다.


건물 옥상의 처마는 인근의 새들이 선호하는 툇마루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함께 모여 대화만 나눈다면 좋겠지만, 그들은 말하는 동시에 뒷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미물일지언정 생리적 욕구를 어찌 탓하랴만, 바로 아래 주차장이 있다는 게 문제다.

수십 마리가 일렬로 앉아 일말의 수치심도 없이 배설의 욕구를 해소한다.

그아래 주차된 차 위에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차를 세워둔 직원들은 끙끙대며 테러의 흔적을 처리해야만 한다.

가끔 모래가 섞인 경우도 있으니, 함부로 닦아내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새는 용변을 보고, 사람은 뒤치다꺼리를 한다.

스마일센터는 법무부 설립 범죄피해 트라우마 치료 기관이다.

이 곳의 직원들은 노상방분(路上放糞)의 경범죄 피해를 매일 경험한다.

나는 목요일마다 그들을 위로한다.


새들이 주로 앉는 처마를 따라 길게 철사줄을 설치해보았다.

철사줄이 방해가 될테니 같은 자리에는 앉지 못하겠지?

이런 인간의 얕은수는 소용이 없었다.

새들은 철사줄을 가볍게 제치고, 줄에 오히려 기대어 앉았다.

여전히 거리낌 없이 배변의 결과물을 투척한다.

왠지 더 편안히 일을 보는 것만 같다.

좌변기가 양변기로 바뀐 듯하다.

아아~ 얄밉다.

그들을 얕봤다.


다시 반격을 준비했다.

독수리 모형 따위를 준비 했다간, 자존심 상한 녀석들의 반응이 더 극렬해질 것이다.

 뾰족한 버드 스파이크를 검색해 보았다.

크레인 기사까지 160만 원이 넘는 거금이 소요된다고 한다.

스파이크 사이로 알을 낳았다는 후기도 보았다. 무서운 놈들이다.


머리를 무게감 없이 홱홱 돌리는 녀석들을 보면, 가끔 갸우뚱해진다.

하지만 속지 마라.

우리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어리바리한 척하는 거다.

(새의 뇌가 작지만 놀라운 능력을 지녔음이 최근에도 보고되었다. Science. 2020 Sep 25;369(6511):1567-1568)

무심한 용변이 아니라 정밀한 조준사격일 수 있다.


새들은 오늘도 유유히 하늘을 날며, 땅 위의 미천한 존재들을 굽어본다.

중력에 얽매인 자들에게 자신의 분변으로 조롱을 일삼는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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