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9) 금보다 더 귀한 것

국립경주박물관 : 신라 금관이 다 모인 자리

by 교사맘

지난 APEC정상회담 기념으로 경주국립박물관에 신라 금관 6개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있다 하여, 잠시 경주 당일치기 여행을 혼자 다녀왔다. 휴직자의 마지막 호사라 생각하며. 평일의 경주는 여유롭고 조용했다. 1월은 많은 일로 바빴는데 분주한 마음도 가라앉는 듯했다.

우리나라 박물관의 긴 줄은, 불편하긴 해도 한편 다행스러운 마음이 든다.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보이는 긴 줄.



권력과 위신.

신라 황금 문화의 정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금관은 최고 권력자만 쓸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권력이 죽음 이후에도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신라 금관 전시. 아래의 설명을 읽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천마총에서 발견된 금관과 금장식물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에서도 이어진다는 계세(繼世) 사상.

이 믿음으로 인해 무덤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함께 묻혔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Three things will last forever—faith, hope, and love—and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고린도전서 13:13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 이후에도 영원한 것은, 권력이 아닌 '사랑'이다. 믿음과 소망은 죽음 이전에 유효한 것이라 내세까지 이어지는 것은 사랑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죽을 때 황금과 묻힐 것이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도 사랑을 받고, 또 나누어야 한다.




지난 1월에, 누구보다 학교를 위해 헌신했고,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선배 선생님이 승진에서 낙마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인사 발령이 난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외부 감사를 통해 절차상의 하자를 짚어 볼 생각으로 장학사, 변호사, 타학교 교장님 등을 바쁘게 만나고 다녔지만, 당사자인 선배님께서 기도와 숙고 끝에 그런 우리를 만류하셨다. 제3자의 개입이 선배님께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신할 수 없어 그 만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선배님이 나를 비롯한 부족한 후배들을 돕고 품어주시느라 윗분들의 눈밖에 났을까 싶어서, 이번 인사가 그 때문일까, 너무 속상하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선배님이 그간 쌓아둔 공로가 얼마나 큰 지도 깨달았다. 후배들이 이 일의 잘못을 짚으며,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말을 하였다. 물론, 우리가 이 인사 발령을 뒤집을 수도 없고, 승진자가 스스로 직을 내려놓는 일도 없었다.




만약 누가 나에게 존경 없이 권력을 갖는 것과,

직은 없지만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것.

이 둘 중에 택하라고 하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어쩔 수 없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타인의 인정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나의 경우, 직만 있고 진심 어린 존경과 사랑이 없다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님의 경우는 존경을 받기 위해 실천한 사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사자도 모르게 행했던 사랑과 선행이 자연스럽게 쌓여 존경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배님을 통해 보았다. 물론 기독교인은 존경이나 타인의 진심어린 인정을 받지 못해도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가 아닌, 선배님이 기도하며 받아왔던 풍성한 사랑과 삶 속에서 그 사랑을 나누는 실천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 사랑이 금관보다 값진 것이고, 금관 없이 묻혀도 영광스러우리라.


선배님이 승진에서 누락된 것이 너무 당황스럽고, 안타깝고, 죄송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선배님이 자랑스러운 마음이다. 또, 조금이라도 더 함께 교사의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 됐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는 교장, 교감보다 좋은 담임교사의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함께 수업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며 많은 꿈을 나눌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오래 학교에 남을 사람들이 바로 우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