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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공부 4화_아이들이 공부할 때 엄마는 뭐 하죠?(1)

아이들이 공부할 때 양육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하여

by 교사맘
아이들이 공부할 때 양육자의 위치와 역할_학원,과외없이 집에서 워킹맘 엄마와 공부하고 있는 초등 삼남매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4화

아빠가 기억에 남기도 전에 돌아가셔서인지, 어릴 때부터 엄마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초등 6학년 때 쓴 일기에 월세 걱정이 있더라고요. 엄마가 힘들지 않게, 내 할 일은 스스로 하자는 다짐, 그리고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자는 내용의 글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내 감정보다는 타인의 필요에 응답하는 일이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일에 늘 책임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학부모님, 동료들의 필요에 반사적으로 응답했고, 내가 속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허물없이 내어주었습니다. 집에서는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책임감이 늘 있었죠. 그리고 스마트폰이 있는 바람에, 밤늦게까지 집 밖의 타인들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0시간 일하고 집에 오면 (20시간 일한 것 같이 강도 높은 날들도 여럿 있습니다.) 너무 지쳤기 때문에,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해소되지 않은 피곤들이 계속 쌓이자 작은 일에도 화가 나고, 계란프라이가 제대로 뒤집히지 않는 것에도 울컥할 정도로 에너지가 없는 상태가 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집공부를 도왔습니다. 기껏해야 아이들에게, "엄마도 쉬고 싶은데 이렇게 너희가 잘 시간이 늦어지니 기분이 안 좋아."라고 진심으로 설명을 했을 뿐입니다. (부정적인 탄식과 한숨이 종종 터져 나오긴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차분하고 이성적인 저를 멋있다고도 했지만 저는 힘들었고, 지금 돌아보니 가엽기도 해요. 제가 함부로 화내고, 모른 척하고, 기분에 따라 대할 수 있는 대상은 제 자신 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종일 타인과 공동체를 위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삶에서 벗어나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대로 살지 않으면, 더 이상은,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휴직을 감행했습니다.


자, 제가 여기에 쓰는 글들은 1년 치 연봉을 포기하고 정리한 경험과 생각들입니다. 이쯤 되면 집공부 안 시키고 학원비 쓰는 게 오히려 더 싸게 먹히는 방법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제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요.^^


저도 내년이면 다시 복직할 것이기 때문에, 나를 돌아보고, 집공부와 엄마로서의 삶을 돌아보고, 학교 생활도 돌아보며 글로 정리해 둡니다. 먼저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혹시 비슷한 상황에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 워킹맘은 돈이라도 벌고 필요할 땐 '일한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가사일에 정당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전업맘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하루 종일 책임감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일 거예요.




지치지 않고 집공부를 지속하기 위해, 아이들이 공부할 때 양육자는 뭘 하면 좋을까요?

어떤 작가님은 아이가 집공부를 할 때 엄마도 옆에서 계속 독서하고 (프리랜서로서) 일을 했고, 그 모습을 아이가 보고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더라고요.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 계속 옆에 있기 힘든 이유>


1. 가족의 건강한 의식주 생활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일단 초등까지는 밥 챙겨 먹이는 게 일이고, 식재료든 학교 준비물이든 아이들 양말이든 뭔가 주문해야 할 게 늘 있습니다. 고장 난 가전의 AS 신청에, 당근 거래, 은행 이체나 돈 관리 등... 끝이 없죠. 퇴근 후 병원이라도 데리고 가야 하는 날은 집에 오자마자 파김치가 됩니다. 남편과 가사일을 동등하게 나눠서 하는 편인데도, 가사노동에 할애되는 에너지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독박육아 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더 고단하실까요.)


2. 나도 너무 피곤하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오자마자 부엌으로 가서 앞치마 입고 밥을 차렸는데, 안 피곤할 리가 있나요. 남편이 늦게 오는 날이면 식사 후 부엌일 하느라 공부하는 아이들 옆에 앉아있지도 못하지만, 앉아있더라도 졸음이 쏟아집니다. 아이들 옆에서 책을 읽으려고 폈는데 하품이 계속 나서 잠시 소파에서 새우잠을 잘라치면, 막내가 "엄마는 좋겠다. 졸리면 잘 수 있어서."라고 하면서 부러움을 표시합니다. "뭐 어때.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고 왔는데!"하고 버럭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학교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고 집에 와서 딱히 하고 싶진 않은 공부를 한다고 앉아있는 피곤함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꾸벅꾸벅 졸면서 독서를 이어간 날도 있습니다. 보통의 저녁날들은, 집에서 눈꺼풀을 유지할 에너지도 없고요, 말할 힘도 없고요, 심지어 내 입에 밥 떠서 넣는 것도 귀찮습니다.


3. 뭘 해도 오래 집중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 옆에 있는 게 마치 '5분 대기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걸 질문하면, 그걸 바로 대답해 줄지, 좀 더 생각하라고 할지, 힌트를 조금만 줄지, 둘째나 셋째의 질문이라면 "오빠한테(형, 누나한테) 물어봐"라고 할지 고민합니다. 이렇게 고민하는 그 순간 제가 갖고 있던 집중력은 흐트러집니다. 이 부분이 저에게 가장 힘든 점이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집중이 필요한 일(독서나 운동, 가사일 중에서도 몰두가 필요한 가계부 정리나 좀 비싼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비교 검색 등)을 하고 있어서, 이게 깨지는 게 힘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일부러 웹툰이나 쇼츠를 봤습니다. 그건 그거대로 끊기니까 화나더라고요! 놀이가 끊겨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웹툰 한 편조차 편히 못 즐기는 내 상황 때문일까요. (그러니 아이들이 집중해서 게임할 때 선 뽑아버리면, 그게 아무리 사전 경고하고 한 행동이라도 진짜 화날 것 같아요.)



아이들이 공부할 때,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교사이자 엄마, 그리고 40대 초반의 나. 실제로 우리의 위치와 역할은 이렇게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저의 고민은 '엄마로서의 위치'를 넘어서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닿아 있습니다.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정답은 없지만,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해가는 중입니다.

어릴 적 일기들, 제가 읽는 책들, 그리고 신앙의 도움을 받아가면서요.

다음 편에서는 제가 찾아낸, 작지만 실제적인 전략들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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