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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Nov 21. 2023

바닷마을

시칠리아 여행기

시아버님이 고향에 땅을 사고 호두나무를 심고 처음에는 커다란 창고를 나중에는 집을 지어 시어머님과 살 때만 해도 삶의 의지가 있었다.

호두나무를 잘 가꾸고 집 옆에 찍어 놓은 자리에 가족묘터를 만들고 집을 잘 관리해서 우리 부부가 내려오면 살만하게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남편은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할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을 하던 중이어서 돌아갈 곳이 생긴 것에 반기는 마음도 있었다.

마지막 보루 같은 심리적 안도감 이었다고 할까?

나는 아버님이 선택한 땅도 아버님이 설계해서 지은 집도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은 여생을 내려와 사는데 나의 꿈이나 로망 따위는 하나도 고려되지 않은 땅이고 집이었다.

그럼에도 남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았다.


시어머님의 치매증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도무지 그 치매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던 시아버님이 시어머님을 돌보다 결국 요양원으로 보낸 다음 시아버님은 깊은 우울증에 빠지셨다.

사랑하지는 않았어도 자식의 어머니로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했던 아내를 버렸다는 자괴감이 들었던 걸까?

시아버님에게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부엌살림에 하루 세끼를 해 먹는 일이며 빨래며 청소며 농사까지 아버님이 해나가야 했지만 무리였다.

청소는 되지 않았고 호두나무는 방치되었고 텃밭을 비롯해서 집 주변은 잡초의 차지가 되었다.

아버님은 세끼를 해 먹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큰 댁에서 가져온 제사를 혼자 지낸다.

아버님에게는 죽음이 삶보다 가깝고 사는 일보다 죽은 이를 기리는 일이 더 중하다.

근 10년 가까이 매 달 시댁을 오가며 가까스로 집을 건사하고 있는 중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힘에 부친다.

남편과 나는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을 버렸다.

그러기에는 너무 적나라한 현실을 매 달 경험 중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건사해야 할 주변 식구들에 빚을 안고 시작한 우리는 여전히 우리 집이 없다.

집이 없다는 것은 자식이 없는 우리에게 어디든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버님이 돌어가시고 나면 언제든 가지고 떠날 만큼의 짐만 남겨 여기서 일 년, 저기서 일 년, 이렇게 살아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때는 더 이상 시동생을 데리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시라쿠사에 며칠 있다 보니 바다가 주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가 있다.

보는 것도 좋고 바다의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아무것도 안 해도 바다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오늘은 바다를 보며 산책을 하다 나중에 바닷가마을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제주도 좋고 속초나 동해도 좋을 것 같다.

여기는 지중해성 기후라 겨울에도 온화한 날씨지만 우리나라는 겨울이 있어 바닷가에서 사는 삶이 상상과 같지 않겠지만 그러니까 잠깐 살아보기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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