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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카의 계단

시칠리아 여행기

by 신순영


노토, 모디카, 라구사는 시칠리아에서 바로크양식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후 재건할 때 그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양식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 같기도 한 모디카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도시다.

모디카에서 만들어지는 초코렛은 유재품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 아즈텍방식으로 만드는데 모래 알갱이를 씹는 듯한 질감이 특징이다.

가공방식의 차이라고 하는데 먹어 보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질감의 초콜릿이었다.

맛이 없진 않았는데 다소 생경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차원에서 재밌었다.


시라쿠사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두 량짜리 기차가 하루에 한 번 운행한다.

모디카는 아름다은 이름과는 달리 산의 경사면을 따라 층층이 지어진 도시라 엄청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전체 모습을 보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가운데 도로를 중심으로 마을이 나뉘어져 있어 이 쪽을 보려면 저 쪽 동네 꼭대기에서, 저 쪽을 보려면 이 쪽 동네 꼭대기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그래서 두 곳의 뷰포인트가 있다.

당연하게도 그 두 곳의 뷰포인트를 올라가기 위해서는엄청난 수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낮은 산 두 개를 계단으로 등산한다고 하면 딱 맞겠다.

오늘 내 종아리가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방치된 빈 집과 제대로 수리가 되지 않은 집들이 많이 보였고 좁고 가파른 계단은 이용하기 너무 힘들었다.

나이가 들어 이런 곳에 살아야 한다면, 하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나는 평지에 공원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이런 곳은 내 무릎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힘들게 두 곳의 뷰포인트를 오른 다음에는 미니관광열차를 타고 도시를 둘러봤다.

기차 시간 30분 전에 내려 기차역까지 여유롭게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마지막에 엄청 뛰어야 했다.

방향은 맞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길 중에 내리막길을 선택한 게 실수였다.

아니 기차레일이 높은 곳에 있다고 어떻게 생각할 수가 있을까?

물론 분명 한 번 지났던 길이지만 그걸 내가 기억할리가 없다.

아무튼 엄청 뛴 탓에 무려 10분이나 여유가 있었다.


빨간색포장지가 예뻐서 석류맛초콜릿을 골랐다.

그 빨간 포장지로 집을 만들고 펜으로 계단을 그렸다.

모디카의 작은 추억 하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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