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 시라쿠사에 온 지 이틀째.
마을 전체가 문화유산인 오리티지아섬에 5박을 계획하고 왔다.
첫날 종일 쏘다니며 시라쿠사의 옛 골목을 걸어 다녔다.
골목골목 예쁜 가게와 상아빛으로 빛나는 대성당과 여전히 뜨거운 오후의 햇살이 말 그대로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광장,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
파란 바다가 보이는 좁은 골목 끝, 모든 것이 참 매력적인데 이상하게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한 방이 부족했다.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대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릴 것은 사방천지여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시원찮은 그림을 그리며 조금 시큰둥해졌다.
이미 숙박을 잡아 놓은 도시들이 뒤를 이어 일정을 바꿀 수도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없다.
해서 오늘은 모처럼 음악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때 음악은 내 여행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신중하게 고른 음악과 노래를 보물처럼 들고나가 듣고는 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쉽게 감상에 빠져버려 몇 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후로 길을 걸을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동 중에도 조심해야 한다. 정신이 다른데 팔려 있으면 자꾸 실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는 음악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고민하다가 임윤찬이 연주한 바흐의 시칠리아노를 유튜브로 찾았다.
오늘은 바닷가를 걸으며 오래된 성 안을 걸으며 시칠리아노를 들었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흘러나왔다.
나는 안다. 무엇이 문제인지.
내 작은 옹달샘의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맑은 물이 고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내 샘은 작고 얕아서 쉬이 그 바닥을 보인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쉬고 먹고 걷고 음악을 들어야 할 시간이다.
드비쉬의 바다와 달빛을 듣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듣다가 다시 시칠리아노를 듣는다.
좀처럼 임윤찬 연주를 끊기가 힘들다.
여전히 윤찬앓이 중.
저녁 무렵 해지는 걸 보러 갔다가 근사한 산책로를 찾았다.
한쪽에는 바다가 한쪽에는 오르막을 따라 아름다운 건물이, 그 아래로 나무가 촘촘히 심어져 길게 열을 이루는 넓은 산책로가 있었다.
이틀을 있으면서 오늘 처음 가게 된 장소였다.
아! 내가 이 길을 걸으며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시라쿠사에 왔구나 하고 느꼈다.
책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근사한 카페도 찾았고 나는 네 끼는 먹을 만큼 큰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도 찾았다.
시라쿠사에서 우연히 만난 콴님 덕분에 귀한 미역국을 얻어 국물에 대한 갈증도 해소되었다.
내일은 커다란 샌드위치를 사들고 오늘 발견한 산책로를 걸으며 음악을 들어볼 참이다.
#여행스케치#드로잉#시칠리아#시라쿠사#기다림#음악#임윤찬#노을#드로잉저널#drawingjournal#travel#sicilia#siracusa#drawing#sk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