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소화시키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여행 나갈 때 음식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리는 것이 없어 현지음식에 쉽게 적응했다.
당연히 캐리어에 김치며 고추장이며 라면 같은 한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음식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나는 해외에 나가서한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한식이야 돌아가면 매일 먹을 건데 나와서까지 한식을찾을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먹는 것에 매우 신경 써야 하는 몸이 되어버린 나는 여행에 음식이 고려대상이 되어 버렸다.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은 내 위장은 매우 까다롭고 깐깐한 성질로 변해버렸다.
물론 지금은 전처럼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조금만 과식을 하거나 맵거나 기름지거나 하면 소화를 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조금씩 자주 먹는다.
외식을 할 때면 메뉴선정에 주의한다.
보통은 검증된 메뉴를 선택한다.
이런 몸이 되다 보니 여행 나와서 음식을 먹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동남아라면 선택의 폭이 넓은데 유럽은 그렇지 않다.
미식의 천국 시칠리아에서조차 마찬가지다.
일단 피자와 파스타는 한 번에 먹기에 양이 많다.
게다가 별로 당기는 음식도 아니다.
매 번 샐러드를 먹기도 그렇고 수프는 미지근하다.
남더라도 이것저것 시켜서 먹을라치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 끼에 몇 만 원을 쓸 만큼 만족도가 높지도 않고 그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다.
조식은 보통 숙소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간단하게, 저녁 한 끼만 식당을 이용한다.
무엇을 먹을지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다.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것은 찰지게 지은 따끈한 밥을 김에 싸 먹는 거다.
된장국과 나물 몇 가지로 먹는 간단한 밥상도 너무 그립다.
진짜 나물이 먹고 싶다. 콩나물, 시금치무침, 취나물, 고사리,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김치도 먹고 싶다.
칼국수나 내가 좋아하는 들기름간장국수, 하물며 파스타조차 내가 만든 것이 먹고 싶다.
이지경이 되다 보니 숙소에 와서 밤마다 유튜브로 한식먹방을 보며 대리만족 중이다.
세상에 내가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의 먹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이다.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함부로 어떤 상황에 대해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단정 지으면 안 되는 법이다.
쉽게 남을 비판해서도 판단해서도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변할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현지음식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최대한 많은 종류의 다른 음식을 경험 중이다.
몰타에 있을 때 한식당을 찾아 오랜만에 제육덮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 내 옆에 어학연수 중인 다국적 학생들이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그중 프랑스 국적 여학생이 매운 볶음우동을 먹으며 얼마나 매워하던지 보는 내가 다 땀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그 학생은 반도 채 먹지 못하고 음식을 남기고 말았다.
그 친구는 얼마나 프랑스음식이 그리울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