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여행짐을 쌀 때 콜라주를 위한 잡지를 한 권 넣을 생각이었다.
짐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다 보니 잡지 한 권도 짐이었다.
무게도 나가고 두꺼운 잡지라 고민하다 남편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남편은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단호하게 가져가지 말라고 했다.
정 콜라주가 하고 싶으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멋진 말을 내게 해주었다.
“예술은 결핍에서 나와.”
백 프로 맞는 말은 아니겠으나 그 말이 꽤 설득력이 있어 놓고 왔다.
콜라주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잡지를 두고 온 것을 잠깐 후회했다.
결국 현지에서 잡지를 한 권 구입했다.
그 한 권을 오늘 또 한 번 탈탈 털었다.
원래는 오랜만에 닭을 한 마리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끝은 산의 경사면을 따라 지어진 집들과 선인장, 길의 이미지로 끝났다.
저 아래 푸르고 푸른 바다도 조금.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 영감‘ 혹은 아이디어는 종종 결핍에서 비롯된다.
없으니 온갖 머리를 쥐어짜게 되고 궁리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쩌다 한 두 개 얻어걸리는 게 있다.
결핍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는 걸 여행 와서 깨닫는다.
어렸을 때 소꿉놀이 세트를 가지고 있는 옆집 아이가 너무 부러웠었다.
작은 그릇, 냄비, 도마와 칼도 있었던가?
나는 대신 조약돌과 나뭇잎, 버려진 뚜껑들을 그릇 삼아 소꿉놀이를 했다.
없는 것은 상상으로 불러오고 만들어내면서 놀았다.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려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력을 동원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소꿉놀이는 늘 재미있었다.
장난감이 많다고 아이의 놀이가 항상 재미있는 건 아니다.
채워 넣을 빈 틈이 있어야 재미있다.
너무 꽉 채워진 행복은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틈이 없으면 부서진다.
오늘 노을은 화산의 불꽃을 잠재우려고 하늘에서 어떤 존재가 내려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대로 화산 속으로 뛰어들어갈 것만 같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과 빛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초승달이 뜰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생각이다. 아무래도 너무 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원래 알아주는 게으름뱅이인데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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