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라구사는 계곡을 끼고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계곡 아래쪽에 위치한 옛 도시를 라구사 이블라, 계곡 위쪽에 새롭게 지어진 도시를 라구사 수페리오레라고 한다.
여행자는 주로 라구사 이블라를 보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다.
숙소가 모여있는 신시가지에서 라구사 이블라로 가려면 가파른 계곡 사이 좁고 위험한 계단을 이용하더나 도시 외곽 쪽으로 비교적 완만하게 내려가게 되어 있는 우회로를 이용하면 된다.
숙소 근처에서 가려면 가파른 계곡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른데 어두워질 무렵 돌아올 때는 길도 험하고 사람도 없고 불도 없이 깜깜해서 바짝 얼어서 돌아왔었다.
나중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묵은 숙소는 비교적 라구사 이블라에 가까운 곳에 있는 숙소였는데도 매일 30분 가까이를 걸어서 라구사 이블라를 다녀오고는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종아리며 허벅지가 뻐근할 정도다.
3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는데 오늘 오전에는 화창하게 개었다가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떨어지고는 했다.
내일 떠나는 날이어서 오늘은 그림 한 두 개를 그리고 싶었는데 손도 마음도 잘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3시 반쯤 계곡을 올라 전망이 좋은 작은 성당 마당에서 라구사 이블라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빗방울이 타닥타닥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 펼쳐놨다.
노트 위로 작은 빗방울이 토독토독 떨어졌다.
그 자리에 물감을 묻힌 붓을 갖다 댔다.
비가 좀 더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비는 또 금세 그치고 말았다.
여행 한 달 만에 라구사에서 비를 만났으니 빗방울을 그린 셈 치려고 생각하며 일어나서 뒤를 돌아봤다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큰 무지개가 눈앞에 있었다.
완벽한 반원을 한 무지개가 이쪽 계곡에서 시작해서 라구사 이블라 마을 위까지 걸쳐 있었다.
조금 있으면 사라질 빛이 아름다운 이블라의 언덕을 비추고 있었다.
구름은 어떤 예술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정엄한 그림을 하늘에 그리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장관에 무지개와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성당 앞에 꼼짝도 안 하고 서있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한숨만 휴~하니 나왔다.
숙소에 돌아와 얇아진 잡지를 꺼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대로 둔 채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을 시리즈를 만드는 기분으로 라구사를 구성했다.
계곡을 가운데 두고 나뉘어 있지만 계단과 오솔길로 이어진 아름다운 마을.
그 속에 나는 말의 뒷모습 반 쪽으로 슬쩍 끼어 넣었다.
그림이 안 그려지는 이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이 그림으로 재해석이 되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콜라주에는 그게 가능하다고 느끼니까 자꾸 종이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뭐가 되었든 재미있는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행스케치#콜라주#시칠리아여행#라구사#라구사이블라#무지개#자연이예술#세번째마을시리즈#travelsketch#drawingjournal#collage#sicila#ragusa#ragusaibla#rainbow#raining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