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팔레르모에서 묵고 있는 숙소는 역에서 가깝고 값이 싸서 선택한 호스텔이다.
여자도미토리가 있었고 침대가 모두 1층 침대인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평점도 나쁘지 않았다.
나폴리 가기 전 하루, 갔다 와서 3일을 예약했는데 첫날 바로 후회했다.
내 방은 부엌 쪽에 있는 방이었는데 매트리스는 꺼지고 베개는 높았다.
무엇보다 부엌에서 밤 12시까지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장난 아니었다.
너무 시끄러워 숙소주인에게 여기는 규칙이 없냐고 문자를 다 보냈다.
답변은 규칙은 있지만 모두 지키지 않으니 직접 말하라는 거였다.
첫날은 포기했다.
돌아와서 3일을 불편하게 지낼 걸 생각하니 돈을 버리고 숙소를 다시 얻을까 고민했을 정도다.
나폴리에서 기차가 연착되고 밤 12시 넘어 도착하는 동안 내내 문자를 보내주고 기다려준 숙소주인에게 감사하기도 했고 그 늦은 시간까지 부엌탁자에서 카드놀이하는 이태리남자들의 격한 화영을 받고 보니 숙소의 분위기가 대충 이해되었다.
이 숙소는 자유방임, 사교와 어울림을 추구하는 숙소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다른 방이었고 침대도 베개도 편안했다.
같은 방에 두 명의 아가씨 중 한 명은 이란아가씨였다.
이번에는 내가 격하게 환영했다.
다시 돌아온 팔레르모는 그제야 자기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폴리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주말이라 분위기는 들뜨고 활기차고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거리를 걸으며 팔레르모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사람들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제 이걸 콜라주로 어떻게 구상하나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숙소에 돌아와 부엌 탁자에 아주 빈약해진 잡지를 꺼내 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갑자기 주인 부부가 들어오더니 10명 정도의 모임이 있다며 탁자를 다시 배치하기 시작했다.
나는 탁자에서 구석 소파로 쫓겨났다.
숙소 주인의 사적인 모임을 호스텔에서 한다고?
여기는 공과 사의 구별이 없는 곳인 거야?
일터이자 집이자 뭐 그런 곳?
내가 무릎 위에 드로잉북이며 잡지며 가위 등을 올려놓고 어쩔 줄을 모르며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어 식전주를 마시며 어마어마하게 큰 목소리로 서로 인사하고 떠들고 환호하고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게도 와인을 권했지만 이미 밖에서 오늘 마실 알코올을 다 마신 뒤라 거절했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는… 누가 한국인과 중국인들 목소리가 크다고 했나.
세상에서 와인에 취해가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길 자들은 없다.
참 뻘쭘하면서도 애매하게 구석에 앉아 있던 나는 어느새 의자 이미지 하나를 오리고 있었다.
이 상황, 이 분위기를 어떻게 조작해 볼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하며 두 번째, 세 번째 의자 이미지를 오리는 사이 주인 여자가 만든 파스타가 접시에 나눠지기 시작했다.
같이 먹자는 제안을 이번에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탁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어제 만난 4명의 남자들을 포함해 모두 친구사이라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대부분 숙소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웃고 떠들고 마시고 먹는다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제껏 먹었던 모든 파스타보다 맛있는 파스타맛에 감탄했고 거절했던 와인을 마시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번역기로 두 문장을 만들어 보여줬다.
“이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아요. 너무 아름다워요.”
이걸 보여준 사람이 모두에게 이 문장을 읽어 줬고 나는 얼떨결에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게 되었다.
게다가 직업을 묻길래 콜라주 작업한 드로잉북을 보여줬다가 졸지에 아티스트로 등극했다.
11시쯤 모임이 끝나고 모두 잠자리에 든 다음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몇 개의 이미지를 펼쳤다가 쌓고 이태리 남자 4명과 음식을 만든 숙소 안주인의 이미지를 넣었다.
나는 오른쪽 아래에 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팔레르모에서 내가 받은 인상이 이렇게 만들어질 줄 정말 몰랐다.
참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