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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Dec 10. 2023

신전의 계곡에서 - 아그리젠토

시칠리아 여행기


카타니아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목적지가 신전의 계곡이 있는 아그리젠토가 된 것으로 여행의 수미상관을 이뤘다.

튀니지 마지막 여행지가 로마유적지가 있는 두가였기 때문이다.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은 그리스유적이지만 두 곳이 형님 아우처럼 닮았다.

지난밤에 비가 내려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많았지만 신전의 계곡을 둘러보기에는 서늘하니 좋은 날씨였다.

두가에서만큼 강렬한 감동은 받지 못했지만 지나치는 풍경으로 바라본 완만한 능선 하나를 걷고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바다와 신전이 있는 언덕 사이에 올리브나무가 심어져 있는 밭과 길과 집들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속에 들어와 있었다.

신들도 저 풍경을 좋아했으리라.


신전의 계곡에서는 올리브나무를 그렸다.

튀니지에서부터 그리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와서야 그린다.

올리브나무는 잎이 길쭉하고 가늘고 날렵하게 생긴 것에 비해 줄기는 오래된 나무일수록 옹이가 지고 마디가 생기고 울퉁불퉁 해진다.

근사해 보이기도 기괴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게 줄기가 굵어지며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다.

여행 인증샷 그림을 하나 그리고 오래된 나무 하나를 그렸다.

올리브나무라고 하기에는 닮지 않았고 그냥 거칠고 투박한 나무 한 그루다.

신전의 계곡에 신전들은 무너지거나 돌더미가 되어 버렸고 이카루스는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내팽겨져 있지만 올리브나무는 여전한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끝나고 내일 밤이면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여행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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