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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an 14. 2024

뿌듯함이 필요해

상처입은 영혼과 동행하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생이 끼어들 틈은 거의 없었다.

일본을 가고 싶어 하는 동생에게 일단 태국을 밀어붙인 것도 나고 동선을 정하고 모든 예약을 진행한 것도 당연히 나다.

어떤 짐을 꾸려야 할지도 정해줬다.

동생은 좋아하는 책을 몇 권 가방에 넣어 왔다가 다시 꺼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동생은 몇 번이나 나름 생각하고 고민해서 짐을 싼 거라고 변명을 하며 아쉬워했다.

좋아하는 나니와단시 인형도 넣어 왔다가 빼야 했다.

가져가봐야 필요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괜히 가방 무게만 더할 수 없었다.

공항수속을 밟고 숙소를 찾아가고 체크인을 하고 택시를 부르고 목적지를 찾아가고 입장권을 사고 음식을 주문하고 돈을 지불하는 모든 과정에서 동생은 가만히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동생은 해외에서 구글로 길을 찾는 방법을 알고 싶어 했다.

어플로 택시를 부르는 방법도 궁금하고 온라인으로 투어를 예약하는 방법도 궁금해했다.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날, 나는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해서 동생에게 돈을 주고 뭐든 먹고 싶은 것을 사 오라고 했다.

동생은 손에 태국 돈을 쥐고 잔뜩 긴장해서는 노점을 몇 번 돈 다음 일본식 야끼만두 5개를 사 왔다.

한 개에 10밧, 50밧을 줬단다.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랬다. 내가 잠시 놓치고 있던 부분.

동생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성취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다.

생활의 많은 부분 도움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동생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주 많다.

돌봄과 보호라는 이름의 부모님의 간섭과 참견이 동생을 너무 숨 막히게 해서 동생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꿈꾼다.

물론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지고 감정조절도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뭔가를 해 냈을 때의 뿌듯함이 동생의 영혼에는 밥 같은 의미다.

채워지지 않는 굶주린 영혼의 한 술 밥은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결정권을 갖는 순간이다.

동생은 자유롭고 싶고  스스로 결정하고 성취하고 싶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뿌듯함과 즐거움으로 온 영혼을 채우고 싶다.

나는 아주 조금 그 욕구를 채워주기로 했다.

동생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줬다.

이제 동생이 입장권을 사고 음식을 사 오고 과일이나 음료도 사 와야 한다.

그 정도는 너무 소소하지만 첨부터 그렇게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품는 일이 능사가 아니다. 등을 밀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자꾸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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