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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ul 14. 2020

아프면서 배운 말 Аптека

여행이야기 -러시아


어떤 나라를 조금 오래 여행하다 보면 그 나라의 간단한 인사말이나 숫자, 생존 필수단어 몇 개 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

안녕하세요, 미안해요,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얼마예요? 맛있어요, 좋아요, 예뻐요... 정도의 말만 잘 사용해도 여행이 한결 수월해지고 재밌어진다.
러시아를 여행할 때는 감사합니다란 뜻의 쓰빠씨바, 얼마예요? 란 뜻의 스꼴까? 를 빼고는 다른 말들이 입에 잘 붙지 않았다.
발음도 어렵고 문장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인사말 하는 것도 애를 먹었다.
대신 러시아에 오기 전 러시아 알파벳 키릴 문자 읽는 법을 대충 배워 온 것이 여행 중에 큰 도움이 되었다.
띄엄띄엄 간판에 적힌 글자를 읽을 때나 찾아가야 하는 지하철역 이름이 눈에 들어올 때는 적잖은 즐거움도 느꼈다.

처음 글자를 배워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상트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묘지를 찾아가던  날이었다.
목 아래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손으로 훑었는데 벌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놀랐지만 저도 놀랐는지 날아가면서 본능적으로 내 목을 찔렀다.
순간 깜짝 놀랄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곧 목 아래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숨을 쉴 수도 없게 부어오르는 것은 아닐까?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우선 약이라도 사서 발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약국을 나타내는 표지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거다.

이를테면 녹색 십자나 빨간 십자 표시 같은 것 말이다.
마침 맞은편에 모스크바 역이 보였다.
큰 역 안에는 약국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역 안으로 들어갔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의 러시아 사전에서  약국이란 단어를 찾아 가게 점원에게 보여줬다.
점원은 나를 보더니 압쩨까? 하면서 손가락으로 내 옆을 가리켰다.
바로 옆에 약국이 있었다.

글자를 모르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다.

약국에 들어가 스마트폰에서 벌 이미지를 찾아 보여주고 목을 가리켰다.

약사는 내 목을 자세히 관찰하더니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주었다.

심각해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행히 별일 없었다.



Аптека. 압쩨까. 약국이란 단어다.

그다음부터 거리를 걸을 때 이 단어만 눈에 쏙쏙 들어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된 단어가 Аптека 인 마냥 이 단어만 보이면 기분이 좋아졌다.

러시아 여행 중 크고 작은 많은 약국을 만났는데

러시아 근교 작고 아름다운 마을 수즈달을 가기 위해 들린 블라디미르에서 만난 약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고 사랑스러운 동네약국 앞에는 멋진 약사 조각상도 있다.

이런 약국이라면 아프지 않아도 자주 들르고 싶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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