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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an 20. 2024

부모의 마음

상처 입은 영혼과 동행하기

자식이 없는 나는 자식의 성장과정을 통해 얻는 뿌듯함과 감동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 이면의 부모로서의 자과감과 열패감 또한.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처음하고 첫걸음을 내딛고 처음 학교에 가고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하룻밤을 자고 글씨를 배우고 읽고 쓰고 무언가 성취하는 그 모든 순간의 가슴 벅찬 감정들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내 아이가 나에게 대들고 반항하고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무시하는 등등의 것들 역시.

어떤 마음일까?

미루어 짐작할 뿐이고 조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뿐이다.


그런데 종종 남동생을 통해 부모의 마음 같지는 않겠지만 그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할 때가 있다.

물론 동생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뿌듯함이나 기쁨, 감동보다는 열패감과 자괴감쪽이 많지만.

그래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폐막식을 보겠다고 혼자 평창에 가는 동생을 기차에 태워 보내면서 얼마나 묘한 감정이 들었던지.

걱정과 기대와 대견함과 뭐 그런 감정들이었을 것이다.

밤마다 혼자 돌아다니는 동생을 위해 코인호텔을 잡아 줬더니 알아서 일어나 씻고 조식도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나, 치과공포를 이겨내고 치과치료를 잘 받았을 때, 어느 날은 유독 엄마에게 잘했다는 말을 들을 때.

그 밖에 작고 소소한 것이지만 혼자 잘 해냈을 때.

하다못해 계단을 성큼성큼 잘 내려올 때마저 가슴 뭉클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이번 여행 중에 번역기의 카메라기능을 알려 줬다.

태국어로 되어 있는 곳에 번역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동생은 너무 신기해했다.

동생은 인터넷세상에 익숙하고 잘 다루는데 그동안 이 기능은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뜻인지 모르던 태국어가 이해가 가기 시작하자 동생은 길을 걷다가도 틈만 나면 번역기를 들이댔다.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다.

박물관에서는 얼마나 열심히 설명을 읽던지 기다리고 기다리다 뻗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동생 모습이 너무 예뻤다.

가슴 뭉클하게 감동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처음 한글을 깨치고 길가의 간판이란 간판은 다 읽으면서 엄마에게 신나게 알려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카메라번역기능을 알게 된 다음부터 식당에 가면 메뉴판의 모든 메뉴를 살펴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른다.

덕분에 주문하는 시간이 엄청 길어졌다.


어쩌다 발마사지를 해 준 분이 나이 많은 할머니였는데

동생은 ’ 할머니 건강하세요 ‘ 란 문장을 태국어로 찾아 놓고 몇 번 보여줄까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는데 그 모습도 참 예뻤다.

몇 마디의 태국 어를 연습 해서 내가 영어로 인사할 때 옆에서 태국어로 인사할 때도 가슴 뭉클하니 기뻤다.

이게 뭐라고 마치 내 아이의 착하고 선한 모습을 발견할 때 느끼는 뿌듯함과 대견함이 느껴졌다.

사실 일상에서 동생은 많이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마음이 안 좋을 때는 험한 말도 자주 한다.

그런 모습에 숱하게 상처 입고 좌절하지만 어느 때 동생 내면의 곱고 순하고 어리고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이 드러날 때는 잠시 눈부시다.


까막눈이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기쁨에 찬 얼굴을 만들고 나서 나중에 놀라움의 감정을 추가했다.

보기에 따라 오! 하고 놀라는 얼굴 같기도, 좋아서 활짝 웃는 얼굴 같기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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