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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an 22. 2024

누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상처 입은 영혼과 동행하기


동생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천성이 밝고 사교적이고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친구들과 가장 신나고 재미있게 보냈어야 할 학창 시절을 지옥처럼 보내고 졸업한 후 동생은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건강한 사회성과 공동체정신을 배워야 할 시기에 억압과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동생은 이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한 없는 갈망으로 사람들을 목말라한다.

나는 정상과 비정상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가슴을 찌르는 통증을 느낀다.

많은 경우 정상과 비정상은 정도의 차이다.

정확하게 선 그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이의 경계를 서성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공동체도 사회적 모임도 매우 적다.

동생은 애를 써서 좋아하는 가수의 펜카페 모임에 나가고 개그콘서트 방청을 하고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을 기웃거린다.

온라인 단톡방에서 동생은 자주 놀림의 대상이 되고 기프트콘을 구걸해서 뜯어 내는 호구가 된다.

그래도 상대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단톡방을 떠나지 못한다.

물론 건강한 관계를 하지 못하는 동생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내가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동생을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움이다.

어떤 환경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동생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우리 가족이 좀 더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여행 중에 동생은 늘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좋아한다.

길을 걷다가도 사람이 많이 모여 있으면 궁금해하고 밥을 먹는 식당에 여러 사람이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며 같이 배시시 웃기도 한다.

그런 동생 때문에 일부러라도 투어를 신청한다.

잠깐이라도 사람들 속에 섞여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는 동생을 위한 배려이다.

투어 내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어도 헤어질 때가 되면 동생은 서운해하고 아쉬워한다.

한인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투어를 한 적이 있던 라오스에서는 동생이 너무 사람들에게 집착을 해서

곤란했던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그저 스쳐가는 사람들이었어도 동생은 그때의 얘기를 자주 한다.

그냥 사람이 그립고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좋은 거다.

누나 한 명으로는 충분치 않은 거다.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여행 중 여러 번 동생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애써 데리고 와서 여행을 하는데 현재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남들의 여행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싫어서 여러 번 짜증도 내고 화도 냈었다.

지금은 그저 안쓰럽고 짠할 뿐이다.

누나가 만들어 줄 수 없는 친구들, 모임들, 사회적 활동들.

의미 없는 군중보다 옆에 있는 누나 한 명이 동생에게 더 귀하지만 그걸 모른다 해도 괜찮다.

동생의 갈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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