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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Oct 05. 2024

제가 도와드릴게요

우당탕탕 배낭여행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해외에서 여권이 없는 외국인은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부르사 가는 버스표를 사는데 여권을 요구했다.

속으로 앗차! 했다. 사정을 설명하려다 가방 안에 있는

여권 사본이 생각났다.

분실한 여권사본이지만 그것까지 확인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히 별일 없이 표를 살 수 있었다.

부르사 가는 버스가 휴게소에 잠시 정차하는데 난데없이 경찰이 올라와서 신원 조회를 시작했다.

아니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내 앞에 오더니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태연하게 사본을 내밀었다. 여권 실물을 요구했다.

이스탄불에 있다고 대답했다.

경찰이 알았다고 하더니 내렸다.

숙소에서도 역시 여권을 요구했다.

사본을 내미니 어린 직원이 사장을 불렀다.

사장은 아무렇지 않게 체크인을 해줬다.

무사히 호텔방에 돌아와서야  오그라질 대로 오그라진심장이 풀렸다.

이걸 돌아갈 때 또 어떻게 하나 싶었다.


호텔 창밖의 풍경이 근사했다.

이보다 더 멋진 전망이 있는 숙소에서도 묵어  봤지만 이렇게 안도감이 드는 풍경은 없었던 것 같다.

밖으로 나가 설렁설렁 걸었다.

이 오래되고 유서 깊은 마을에는 아주 멋지고 근사한 플라타너스가 많다.

부루사의 울루 자미에는 내가 이제껏 본 가장 많은 여자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칸막이 작은방이 아닌 모스크 회당에서.

관광지가 아닌 진짜 터키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편안하고 안도감이 느껴지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들.

사흘 만에 죽은 듯이 10시간을 잤다.


다음 날 근교 주말르크즉 마을을 방문하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찾아 아주 잠깐 두리번거렸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본 한 터키인 남자가 다가와 어디 가냐고 물었다.

이런 경우 사기꾼 아니면 친절한 터키인, 둘 중의 하나인데 이제는 믿을 수 없는 내 촉이 두 번째라고 속삭였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내가 갈 곳과 가면 좋을 곳을 종이에 적어 가며 알려주고 무사히 버스에 타는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

2012년 구글맵이 없을 때 길치인 내가 터키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서 있기만 하면 와서 도와주는 터키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든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부르사에 와서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스탄불에서 카페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글을 올렸을 때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연락을 준 한국인이 두 명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봤다.

정말 간절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제가 도와드릴게요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인지.

나는 늘 누군가에게 주는 걸 많이 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터키 영사관의 김보람 님의 친절은 영사관 직원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 줬다.

여행 며칠 만에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가 내 앞에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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