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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Oct 06. 2024

존재의 가능성

우당탕탕 배낭여행기


한국에서  플라타너스는 뭔가 홀대받고 있는 느낌이다. 버즘나무로 불렸던 것을 보면 나무껍질이 얼룩덜룩하고 보기 싫게 벗겨지는 것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가 보다.

하기는 그 자태나 용모가 수려하기로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를 이기기 어렵고 고고하고 운치 있기로는 소나무를 따라가기 힘들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나도 풀라타너스에 크게 눈길을 준 적이 없다.

플라타너스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인지는 유럽여행을 하면서 알았다.

우리와 다르게 서양인들에게 플라타너스는 매우 친숙하고 사랑받는 나무다.

플라타너스가 가장 아름답고 멋지게 형상화된 곳은 다름 아닌 가우디 성당이다.

가우디 성당 내부는 거대한 플라타너스숲이다.

빛이 사선으로 들어오는 오후에 성당 안에 있으면 거대한 플라타너스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을 수도 있다.


터키 부르사에 수령 600년이 넘는  플라타너스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부르사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600년이 넘은 풀라타너스를 볼 수 있다니!

그렇게 오래 존재할 수 있는 나무였다니!

부르사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인카야 마을에 있는 620년 된  플라타너스를 찾아갔다.

사람들이 나무가 만들어낸 거대한 그늘아래서 먹고 마시며 놀고 있는 모습이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우리나라라면 보호수로 지정해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해놨을게 틀림없다.

사람들이 나무와 가깝게 있는 것은 보기 좋았지만 나무기둥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낙서를 보니 사람들이

이 나무가 주는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에는 골야즈호수에 있는 700년 된 플라타너스를 보러 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태풍 소리 같다가 거센 파도 소리 같다가 사람들의  함성 같기도 했다.


플라타너스가 준 감동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가능성을 봤다.

우리에게는 봄이 되면 무참히 가지치기를 당하는 나무지만 이 나무가 그 가능성을 펼치면 얼마나 거대하고 아름답고 당당하며 품위 있는 나무가 될 수 있는지 그 존재의 무안한 확장성을 봤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 내게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내가 가진 가능성에 조금 더 눈여겨볼 생각이다.


부르사에 있는 동안 이스탄불에서 입었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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