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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Oct 22. 2024

길고 긴 밤을 지나

우당탕탕 배낭여행


부쿠레슈티에서 2박을 하고 오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던 계획이 무산되어 선택한 야간 기차.

어차피 부쿠레슈티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인 건 마찬가지여서 차라리 잘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꼬박 하룻낮과 밤을 박물관 하나에 미술관까지 돌아보며 알차게 쓰고 한 시간 일찍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야간 기차라고 해서 침대차일 거로 생각했다.

동남아에도 있고 러시아에도 있고 하물며 인도에도 있는 야간 침대열차.


플랫폼 번호가 뜨기를 기다리며 전광판을 보는데 갑자기 120이란 숫자가 떠 있는 게 아닌가?

무려 두 시간 연착이었다.

기차역은 앉을 의자도 거의 없고 화장실 문은 잠겨 있고 쓰레기통 주변에는 파리들이 날아다니고 당연히 냉방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

종일 2만 5천 보 이상을 걷느라 피곤해진 몸이 어느새 땀범벅이 되어 버렸다.

인포에 가서 표를 보여주며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침대차인지 확인해 보았더니 아니란다.

길고 힘든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는 130분 만에 나타나서 타고 온 사람들이 내리자마자 승객들을 태웠다.

기차 내부는 이전 승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며 흘린 음료수 등으로 바닥이 끈적이고 난리였다.

좌석번호 따위는 의미가 있을 턱이 없었다.

내가 좌석을 찾는다고 어리바리한 사이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대기하고 있었다.

간신히 한 자리 잡고 앉았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 않았다.

도저히 자며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야간열차는 직통이 아닌 완행이었다.

나는 오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못 타고 밤에 출발하는 통일호를 탄 셈이었다.

화장실 상태가 너무 지저분해 인내심을 갖고 버티기로 했다.

3주 안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서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거쳐 몰도바까지 갈 계획을 세웠을 때 나는 분명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면 절대 이런 선택을 했을 리 없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불편한 자리에 앉아 몸을 비틀며 밤을 새웠다.

기차는 밤새 아주 느리게 달리고 달려 오전 10시 반에 시비우에 도착했다.

잠깐 비가 내리더니 그쳤다.

가방을 숙소에 맡기고 체크인 시간이 남아 꼬질꼬질하고 피곤함에 전 몰골로 마을 탐색을 나섰다.

드디어 나는 동화 속의 세상으로 들어와 있었다.

너무나 궁금했던 감시자의 눈들.

지붕 창문이 감시자의 눈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온갖 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일요일.

마을은 오늘 하루 축제의 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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