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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Dec 09. 2020

어떤 기억

사노라면


그의 주머니에  500원이 남아 있었다.
그는 200원으로 전철 표를   사고 남은 300원으로 붕어빵을 사서  손에 쥐여주었다.
 500원뿐이라고 그가 내게 말해주었던가?
나는 어떻게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까?

 생일이었던 어느 날 , 그는 선물이라며 라디오에 흘러나온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신문지로 포장해서 주었다.
그는 내게 다른 것을 주고 싶었을까?  좋고 근사한 것을 예쁜 포장지에 싸서 주고 싶었을까?

그날 받은 다른 선물들은 기억에 없다.

오로지 신문지에 둘둘 말린 테이프를 뜯어보던 기억만 남아있다.


나는  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들을 오래오래 들었을 것이다.
 테이프는 삶의 어느 순간  곁을 떠났다.
오래된 추억들이 가는 곳으로.

그가 나를 집으로 데리고  적이 있었다.
영등포 쪽방촌이 자리 잡고 있던 골목 어디쯤.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문까지  발자국의 폭에  길이만큼의 공간이 부엌이면서 씻는 공간이었다.
화장실은 공중 화장실을 썼던가? 아마도.
작은방에 어머님이 계셨다.
부모님과  아들의 짐들로 가득  작은방에 들어가 앉았다.
어머님이 커다란 양은솥에  감자를 먹으라고 내왔다.
그게 그렇게 맛있을  없었다.
그와 결혼하면  방에서 같이 사는 걸까?
아니면 이와 비슷한 방을 얻어 살게 될까? 감자를 먹으며 상상했었다.
상관없었다. 그런 가난 따위. 볼품없고 초라하고 궁색한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맛있는 감자 맛에 묻혔다.
살고 있는 공간을 보여 주었다는 것은 적어도 나는  모습에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라고,  얘기는 그의 마음속에 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다만  사실이 기뻤다.

친구들은 그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연민일 뿐이라고.
연민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상대를 내려다보는 사랑이라고 했다.
그때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정한 사랑, 진정한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던 시절이었다.
그에 대한  감정은 분해되고 해체되어 분석당하고 부정되었다.

어느 시점에서 그와 나의 인연은 어긋났고 그렇게 우리는 스쳐 지나갔다.
그는 지금 멋진 여자와 결혼해 예쁜 딸을   낳고  이상 초라하거나 궁색하지 않을 만큼  살고 있다.

그때 먹었던 붕어빵 맛은 맛이었는데 그때 먹었던 감자 맛은 따뜻한 맛이었다.

결혼하기  군대  있는 남편을 만나러 거의 매주 면회를 갔었다.
의정부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금촌에 내려 부대 앞에 가서 면회 신청을 했다.
점심을 먹고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걷고  어딘가를 들어가고 저녁을 먹으며 청하를  병쯤 마시고 헤어졌다.

어느  그렇게 남편이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돌아섰는데 주머니에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하철은 패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버스비가 없었다.
슈퍼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버스비를 빌렸다.
군대  남자 친구를 만나러  처자에게 버스비를 빌려주지 않을 만큼 인색한 가게 주인이 부대 주변에  명이라도 있었을까 싶다.
그때는 매주 남편을 만나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항상 울었다.
헤어짐이 싫어서. 기다림이 싫어서. 방금까지 전해져 오던 손 안의 따듯한 온기가 벌써 그리워서.
서럽게 울며 울며 집에 왔다.
몰래 연애하던 시절이었지만 동생들은 알고 있었던가?

겨울이 되면 문득문득 그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오래된 기억인데 여전히 떠올리면 가슴이 욱신거리는.
빛바래고 희미해진 사진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미소처럼 눈앞에 어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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