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보이는 것들

사노라면

by 신순영

손이 아파 한의원을 찾아가 처음 수기치료를 받으러 침대에 누웠을 때 원장이 물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어느 날부터 갑자기 손가락이 안으로 잘 굽혀지지 않아요.”


“갑자기 가 아니겠죠? 오래전부터 안 좋지 않았을까요?”


“아뇨, 괜찮았는데 미술학원 다니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미술학원 다니는 사람은 다 아파야 하겠네요?”

​원장은 경상도 억양이 섞인 우렁우렁 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빛이 순하고 따듯하지 않았다면 혼나고 있다고 생각할 뻔했다.

“자, 손 좀 볼까요?”

원장의 크고 두툼한 손이 내 오른 손가락을 사정없이 뒤로 잡아당겼다.
고문을 받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머릿속이 하얘지는 아픔이었다.

​한의원에 다닌 지 3주가 되어도 손가락 강직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원장이 알려준 손가락 스트레칭으로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 통증만 심해진 느낌이었다.
아파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통증으로 신경은 예민해지고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어디 손, 특히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가?
결국 수기치료를 받으려고 침대에 누운 어느 날 내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손이 너무 아파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스트레칭을 하면 손바닥이 너무 아파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스트레스 받으시면 안 돼요. 풀리려면 굳은 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요?

스트레칭 더 하셔야 해요. 손바닥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다 아파요. 그래도 더 하셔야 해요.”

이번엔 정말 혼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서 온 거지 혼나려고 온 게 아닌데, 아프니 스트레스를 받는 게 당연하고, 나는 한다고 하는데 전혀 그 노력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서러운 마음이 왈칵 일었다.
그날 밤 집에서 이를 악물고 손가락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술이 알싸하게 취한 남편이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쪼르르 일어나 가방도 받아주고 옷도 받아주며 옆에서 참새처럼 종알거렸겠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혼자 정리하고 씻으러 나온 남편이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짓는데 그만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나 너무 아파.”

당황한 남편은 어쩔 줄 모르고 내 뒤에서 나를 한참 안아 주다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만 아픈 기분이었다.

​아프면 마음의 여유를 잃는다.
원장은 원장의 일을 하는 중이고 남편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을 뿐이다.
내 몸의 고통은 오롯이 내 것이어서 나는 아픔을 참고 내 몫의 일을 하면 된다.
알고 있음에도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다.
아프면 스트레스받는 게 당연하다는 위로, 그래도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하면 좋아진다는 격려.
그 정도의 위로와 격려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날 통증으로 힘들어 남편에게 불평을 했을 때 남편은 한참을 직장인들이 겪는 만성통증과 본인이 오래전부터 겪고 있는 어깨 통증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런 얘기가 아니었으나 남편은 본인이 아픈 걸 내색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란 걸, 세상에는 만성통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거나 비슷한 통증에 시달린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해서 내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의 폭을 넓일 수 있을 뿐이었다.



한의원 다닌 지 얼추 석 달이 되어간다.
내 손은 이제야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통증도 많이 사라졌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한시름 놓겠다.

​아파서 잠을 못 자고 있을 때 사람들이 떠올랐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심하면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는 사람들.
퇴행성이나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종일 서서 일해서 붓고 아픈 발의 통증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
목이나 허리, 관절 등의 만성통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
나이 들어온 몸이 다 쑤시고 아픈 사람들.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 밤도 통증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아프니 자꾸 아픈 사람들만 생각났다.


“손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네요? 손만 풀리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기까지 오는데 힘들었어요. 그죠?

아직 멀었어요. 하던 대로 계속하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씩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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