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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Aug 15. 2021

산다는 일이

사노라면


지난번 찾아뵙고 두 달 반 만에 본 시어머님은 비교적 건강해 보이셨다.

자세히 보면 등이 조금 더 굽은 것 같고 수행능력도 조금 더 떨어진 것 같고 감정도 더 단순해진 듯했지만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반면 시아버님은 내내 몸이 안 좋으셨던 것 같다.

더 여위여지셨고 무엇보다 활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활기는 마당 곳곳을 점령한 잡초에서만 넘쳐나고 있었다.


잡초는 텃밭을 절반쯤 점령해 놓고 대놓고 집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저 놈의 잡초들.

시부모님이 시골에 내려살게 되면서 깨달았다.

나는 결코 저 잡초들을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도 안다.

잡초가 잡초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그것들도 어여쁜 꽃이 피고 새순들은 곱고 연하며 때론 사랑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그러나 아니다.

내 팔다리를 할퀴는 환삼덩굴이나 산딸기의 가시덩굴, 무섭게 뻗어오는 칡넝쿨, 그리고 쑥, 뽑히지도 않고 조금만 방심하면 무성히 자라 마당을 침입하는 징글징글한 쑥에 나는 분노와 살의를 느낄 때도 있다.

나는 속으로 불평을 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진짜는 이제부터니까.


환기와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집안은 끈끈하고 눅눅했고 특유의 톡 쏘는 냄새가 공기 입자에 붙어 떠다니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주변은 음식물의 잔해가 폭탄이 터진 듯 사방에 튀어 있었고 설거지가 잘되지 않은 그릇들은 기름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시아버님이 담배를 피시는 안방 화장실은 다크 시티의 공중화장실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변기와 세면대. 니코틴으로 누렇게 물들어 있는 벽과 천장.

치우지 않은 시어머님 기저귀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와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담배 냄새가 섞여 크게 숨쉬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이러고 살 수 있을까?


자식이 있으면 뭐 하나?

부모가 이 지경이 되어 살고 있어도 들여다보는 자식 하나 없는데?


누가 이렇게 욕을 한대도 할 말이 없었다.


두 달 반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니, 맞다, 자식이 있으면 뭐 하나.


​부엌을 치워야 점심을 차릴 수 있었지만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했다.

시어머님 기저귀를 모아 비닐봉지에 넣어 냄새나지 않게 묶어 내놓고 베이킹소다를 풀어 변기부터 청소하고 급한 대로 세면대의 묵은 때와 바닥 청소를 했다.


부엌에 있는 모든 그릇과 냄비와 반찬통과 수저를 꺼내 다시 설거지를 하고 준비해 온 것으로 점심을 해 먹고 가스렌즈가 놓여 있는 바닥과 주변 벽과 냉장고 안을 청소했다.


남편과 시동생이 쓸고 닦은 거실 바닥을 다시 닦고

안방에 있는 이불과 냄새나는 시어머니 옷들을 찾아 빨아 널었다.

시아버님은 뒤로 조용히 물러나 계셨다.


시어머님은 내 주변을 서성였지만 그때마다 시아버님은 어머님께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아버님 제발요, 어머님에게 화내지 마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고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사람이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종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나요?

나는 속으로 아버님께 화를 냈다.


시어머님은 아버님이 잔소리를 하면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버님의 눈치를 본다. 아버님을 무서워한다.

아버님과 하루 종일 있어야 되는 날, 어머님의 심리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아버님의 짜증과 피로와 답답함과 지겨움도 짐작할 수 있다.

아버님의 마음속 지옥을 나도 숱하게 경험했으므로

나는 아버님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아버님과 어머님이 같이 지내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일까?

우리 부부가 내려오는 날이 늦어지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견딜만하다고 하시지만.


마당의 풀들은 아주 조금만 손을 댔다.

풀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뽑아야 했다.

어머님을 데크에 앉혀 놓고 풀을 뽑았다.


고개를 들어 어머님을 보면 어머님은 혼자 노래를 부르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 문득문득 길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면 조용히 어머님을 불렀다.


어머님 제가 누구예요?

몰라.

어머님 며느리잖아요.

맞다 며느리.

이름이 기억 안 나면 며느리, 며느리도 기억이 안 나면 딸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어머님 딸, 어머님은 내 딸 해요.

그래.

어머님이 웃는다.

손뼉을 치며 웃는다.

하룻밤을 자고 남겨 놓은 일을 마저 했다.

어제 끝나지 않은 빨래와 화장실 벽 청소. 마당의 풀과 텃밭정리.

창고에 쌓여 있는 쓰레기는 아주 일부만 치울 수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만 모아 치우고 커다란 포대자루에 쌓여 있는 쓰레기는 추석에 내려와 치우기로 했다.

쓰레기를 버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힘들고 귀찮은 일들은 집안 구석구석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은 어머님과 둘이 지낼만하다 생각하셨을 것이다. 죽으면 들어갈 땅을 옆에 끼고 노년을 남의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치매인 어머님을 돌보는 일이 어떤 일인지 몰랐을 때,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집 안팎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일인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때.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돌봄이 필요한 부모님은 멀리 계시고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고 코로나는 끝날 줄 모르고.

돌아오는 발길이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시동생이 말했다.

그렇게 해봐야 힘만 들고 또 금방 더러워져요.

내가 대답했다.

손을 놓는 순간 걷잡을 수없이 망가져.

더 좋아지길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지 말라고 하는 거야.

간신히 버틸 정도만 하는 게 이 정도야.

또 오면 되지.

담에는 쌓인 쓰레기나 다 치워보자고.


​돌아오는 길 하늘이 참 예뻤다.

아득한 시간을 두 분이 잘 버티고 계시기를.

쑤시는 팔다리를 주무르며 혼잣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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