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순영 Feb 05. 2022

동서의 지분

사노라면

시어머님은 아들 셋을 두셨는데 그중 첫째와 둘째만 결혼에 성공했다.

나는 첫째와 결혼했고 어쩌다 보니 혼자가 된 셋째를 데리고 살고 있다.

결혼한 아들 중에 둘째만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연년생으로 얻었다.

나와 남편 사이에는 자식이 없는데 의도한 것은 아니고 노력은 했으나 생기지 않았다.


경상도분이셨던 시어머님은 청소와 빨래에는 엄청난 재능을 보이셨지만 반대로 요리에는 통 재능이 없어 결혼 전에 콩나물 한 번 무쳐보지 않았던 나는 금세 시어머님을 능가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딱 한 가지, 간을 볼 줄 안다.

간만 맞으면 대부분의 음식은 먹을만하다.

시어머님은 딱 그 한 가지, 간을 보는 재능이 없으셨다.

어머님이 하신 요리는 모든 맛이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풍미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각각의 맛이 따로 놀았는데 정말 설명하기 힘든 희한한 맛이었다.

나는 눈치껏 어머님 몰래 간을 보고는 했는데 소금이나 간장을 조금 더 넣거나 물을 덜거나 더하거나 설탕이나 감미료를 조금 추가하는 식이었다.

그런 날은 식구들의 손놀림이 조금 더 빨라졌는데 그럴 때 어머님은

‘오늘은 맛이 희한하다’ 고 하시며 웃으셨다.

희한하다는 말이 경상도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희한한 맛이 다시 희한해지는 경험을 몇 번 하신 이후로 시어머님은 은근슬쩍 부엌일에서 뒤로 빠지셨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나는 시댁 부엌을 접수했다.


시아버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 한 가지만 있으면 식사를 하셨는데 대개는 비리거나 날생선이 거기에 속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다.

단번에 아버님의 취향을 파악한 나는 두 번의 시행착오도 거치지 않고 시댁 모임이 있을 때마다 아버님이 좋아하는 해산물 위주로 장을 봤다.

거기에 어머님이 좋아하는 꽃게나 멍게,  굴을 추가하면 어렵지 않게 상을 차릴 수 있었다.


시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신 이후에는 상차림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양념, 그릇까지 가져가서 음식을 한다.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이거나 여름휴가나 생일날 즈음해서 온 가족이 모여 하룻밤 자고 갈 때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훨씬 늘어나서 나는 미리 메뉴를 짜고 필요한 모든 재료와 도구를 가져간다.


또 긴 서사를 풀었다.

내가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시댁 부엌을 접수한 지 얼추 20년이 되었고 본격적으로는 10년쯤 되었으며 동서가 생긴지는 16년이 되었다.

하필 동서가 결혼하고 바로 아이 둘을 연달아 낳는 바람에 동서 손을 빌릴 수 없었는데 그래도 내심, 아이들이 크면 동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내가 음식을 준비하면 동서가 설거지를 했다.

동서가 설거지를 하고 빠지면 내가 빠진 솥이며 냄비 등을 찾아 다시 남은 설거지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나마도 중간중간 끊겨 설거지를 하다 만 적이 많았는데 어머님은 굳이 동서에게 시키지 않았다.

어머님에게 나는 며느리, 동서는 손님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건 마치 나는 시댁을 내 집으로 생각하지만 동서에게 시댁은 그냥 시댁인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동서는 착하다. 스스럼없고 편안한 사람이다. 애들도 잘 키우고 인색하지 않다.

문제는 일머리가 내 기준에서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딱 시킨 일만 한다. 하나를 시키면 하나만 한다.

두루두루 살펴서 눈치껏 내 일을 도와줄 줄 모른다.

마음이 못되거나 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모른다.

나는 아이들이 크고 10년쯤 내가 하는 것을 보면 한 두 가지 알아서 하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를테면 ‘형님, 이번에는 제가 해산물을 사 갈게요.’라든가, ‘형님, 제가 반찬 몇 가지 사갈까요?’

라든가.

시키지 않으니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구체적인 품목을 꼭 집어 말해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제사상에 올릴 과일을 준비해 오라던가 라는 식으로.

그러면 아주 좋은 과일을 넉넉히 준비해 온다.

사실 나는 이에 큰 불만이 없다.


이쯤 돼서 동서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집오니 형님이 있는데 이 형님이 어찌나 손도 빠르고 발도 빠른지 뭘 해볼까 하면 이미 끝나 있기가 일쑤다.

알아서 일을 나눠주고 시키면 좋을 텐데 그냥 혼자 다 해버린다.

은근 불편하고 눈치도 보이는데 할 줄 아는 것은 별로 없고 가르쳐주지도 않고, 에이 모르겠다, 애들이나 보자. 하지는 않았을까?

일 잘하는 사람 옆에 일이 느린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도 분명 많았을 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동서가 설거지를 접수했다.

밥을 먹고 나면 식구들이 상을 치우는 사이 동서는 개수대 앞에 떡하니 서서 설거지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양이 많건 적건 큰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빠지지 않고 깨끗하고 야무지게 설거지를 한다.

잠깐 동서가 보이지 않아도 내가 설거지를 하면 안 된다.

그건 동서의 영역이고 동서의 지분이다.

급기야는 작년 명절에 전을 부쳐보게 했더니  만했는지 이번 설날 아침에는 깨우지 않아도 먼저 일어나  부칠 준비를 하는게 아닌가!

동서가 늦게 일어나면 내가 후다닥 부칠 요량이었는데 슬쩍 뒤로 빠져 동서가 하게 두었더니 호박전과 동태전을 타지도 않게 노릇노릇 잘 부쳐냈다.

물론 미리 동태전을 녹여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하고 소금을 살살 뿌린 다음 밀가루를 묻히는 은 아직 나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동서가 설거지에 이어  부치기를 자신의 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덕분에 동서의 지분이 조금 늘었다.

동서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내 지분을 기꺼이 나눠 줄 생각이다.


아이들은 컸고 치매이신 시어머님은 요양원에 가 계시고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은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가족, 식구, 그 말속에 깃든 다정하고 따듯한 온기를 오래 지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님의 플렉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