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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ul 06. 2022

스코틀랜드의 바람

여행 이야기

영국을 오래 궁금해 하긴 했지만 영국 안에서도 스코틀랜드를 더 궁금해했다.

스코틀랜드가 가진 춥고 어둡고 음울하고 어딘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읽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 가진 스코틀랜드의 이미지는 기껏해야 체크무늬의 모직 의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여행의 시작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였고 전쟁으로 늘어난  비행시간 끝에 도착한 첫날  발에 쥐가 나면서 호된 신고식을 웠지만 에든버러는 좋았다.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하면 나는 바람이라고 하겠다.


​에든버러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곧 우산이 거의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빗줄기가 강하지 않았고 방향을 예측할 수 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우산을 쓰는 게 의미 없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인들 대부분 우산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늘 바람이 불었다.

그냥 바람이거나 비와 바람이거나 햇살에 바람이거나 했다.

바람은 예상보다 차가워서 내내 경량 패딩을 입고 있어야 할 정도로 추웠다.

예상보다 찼는데 스코틀랜드의 바람을 상상하며 내가 기대했던 딱 그런 바람이었다.

내가 스코틀랜드의 바람을 상상하기는 했던가?

비 오는 런던 거리의 분위기를 상상하는 정도의 추상적인 상상이었을 것이다.

바람 부는 폭풍의 언덕을 상상하듯.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였으니 내가 경험한 바람은 비교적 온화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종일 바람이 불었다.

햇살이 나면 서글서글했고 비가 내리면 선득선득했다.

꽃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은 끝이 달콤했고 잔디를 지나는 바람은 울렁울렁했고 큰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은 와글와글했고 넓은 들판을 지나는 바람은 서로 엉키고 풀며 왁자지껄했다.

차가웠지만 산뜻했고 날카로웠지만 금세 부드러워졌다.​


나는 에든버러에 있는 동안 코를 벌름거리며 다녔다.

비가 와도 좋았도 바람이 불면 더 좋았다.

내 오감의 세포를 세워 정신나간 여자처럼 희죽거리며 돌아다녔다.

이제 에든버러를 떠올리면 여행 내내 맡고 느꼈던 바람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어느 날 숙소에 돌아와서 바람의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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