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순영 May 24. 2022

기억과 망각

사노라면

치매가 온 어머님과 7년을 같이 살면서 시아버님은 내내 미움과 울화로 가득 찬 날들을 보내셨다.

시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시고 난 후에야 아버님도 어머님도 온전한 휴식을 찾을 수 있었다.

대신 미워할 대상도 남지 않은 아버님은 빈껍데기처럼 쪼그라져 버렸다.

삶의 생기라고는 한 줌이나 남았을까?

그래도 그럭저럭 혼자 사는 생활에 적응해 가시고 있다.

늘 같은 국을 한 두 가지 끓여 놓고 한 두 가지 반찬을 더해 식사를 하신다.

드실 만큼만 하고 남을 것 같은 음식은 처음부터 사질 않는다.

냉장고에는 두부나 계란 같은 재료 몇 가지만 들어 있을 뿐이다.

간소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몇 가지만 해 드시니 먹는 게 부실하다. 먹는다는 일에 큰 의미를 두시는 것 같지도 않다.

한 달에 한 번 아버님의 기력을 돋울 음식을 장만해 간다. 지금 나의 최선이다.


시댁에 갈 때마다 살금살금 물건을 치운다.

거실에 늘어놓은 물건은 이케아 트롤리에 담아 정리해 드리고 구석에 있던 빈 박스를 버리고 들통이며 김치통의 제자리를 찾아주면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쌓이지 않는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깨진 플라스틱 바가지도 버리고 창고 구석에 박혀 있는 절대 쓰지 않을 게르마늄 그릇이며 오래된 냄비들도 갈 때마다 조금씩 가져와 버린다.

아버님에게는 집을 가꾼다는 개념이 없다.

애초에 사람을 돌본다는 개념도 없으셨다.

일은 하되 돈을 모은다는 개념이 없으셨던 것처럼.

꽃 한 송이 사다 심지 않은 마당은 잡초들 천지다.

난 잡초가 싫다.


내가 버리는 것들에는 어머님의 물건들도 있다.

한 때는 어머님에게 속했으나 이제는 돌아갈 대상을 잃은 물건들 중에서 신중하게 몇 가지를 골라낸다.

신발장에 들어 있는 낡은 신발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밑창이 닳고 가죽이 일어난 신발들.

서랍장 안에 세탁이 되지 않아 누렇게 변한 속옷들.

얼룩이 묻거나 해진 옷들. 구멍 난 양말들.

닳고 닳은 수건들 버리고 꽁꽁 싸매   수건들을 꺼내 놓는다.

시댁에 있는 시어머님의 물건들은 이제  하나도 어머님께 닿지 않는다.

어머님이 아끼던 재킷도, 아버님과 싸우고 홧김에 보란 듯이 장만한 밍크코트도 손수 만든 고운 모시옷도 다시 어머님이 입을 일이 없다.

 물건들은 주인 잃은 미아가 되어 옷장 구석이나 서랍장  쪽에 조용히 풀이 죽어 쳐저있다.

시간과 함께 조금씩 흐릿해지다 종국에는 소멸할 것들.

어머님의 일부가 우리 곁에서 그렇게 조금씩 소멸해가는  아서 버리야 할 걸 버리면서도 늘 서글픈 생각이 든다.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실 때 한 보따리 싸 갔던 어머님의 옷들은 보따리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요양원에서는 관리하기 쉬운 옷을 어머님께 입혀 드렸을 것이다

아버님은  보따리를  오래도록 방구석에 그대로 놓아두셨다.

어느 날 내가 보따리 째 옷장 안에 넣었다.

 보따리도 종국에는 사라지겠지.

안 방에 여전한 어머님의 흔적을 아버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모르겠다.

있지만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가끔 떠올리는 아버님의 소회를 난 알 길이 없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내가 어머님의 것을 살금살금 버리고 치우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신지나 모르겠다.

알면 서운하실까?


아버님은 가끔 어머님의 근황을 물으신다.

어머님은 9명이 지내는 시설로 들어갔다가 군립요양원으로 옮겨 가셨다.

우리는 어머님이 첫 시설에 계실 때 보고 군립요양원으로 가신 다음에는 한 번도 뵙지 못했다.

오미크론 때문에 면회가 계속 금지되었다.

그사이 어머님이 오미크론에 걸렸다 회복되셨고 또 다른 분들이 오미크론에 걸렸고 그럴 때마다 요양원은 오랫동안 문을 걸어 잠갔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우린 요양보호사를 통해서만 어머님의 상태를 듣는다.

어머님은 비교적 잘 지내고 계신단다.

이런저런 얘기를 아버님께 해드릴 때 아버님의 표정은 모호하다.

애정도 애틋함도 없어 보였는데 미안함이랄까 안쓰러움이랄까… 오래 함께 살 비비며 살았던 사람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슬쩍슬쩍 비친다.

지난번 팔순 생일날 아버님은 남편과 시동생을 데리고 호두나무 심은 밭 윗자리에 본인이 묻힐 자리를 다시 한번 알려주고 오셨다.

생의 의지보다 죽은 다음 들어갈 자리에 대한 욕망이 더 큰 것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지난번 시댁에 갔을 때 어머님의 가방을 정리하다 어머님이 끼시던 금반지를 발견했다.

두고 올까 하다가 손가락에 끼고 왔다.

어쩐지 어머님이 옆에 계신 것 같아 내가 갖기로 했다.

난 어머님이 몹시 보고 싶다.

남편을 닮은 손과 발이며 매끄러운 살이며 웃는 얼굴이 환한 모습이며 모든 것이 다 그립다.

어머님은 우리를, 자식을, 남편을, 며느리를, 손자 손녀를 다 잊으셨을 것만 같다.

다음 달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어머님이 그립고 잊지 않았으므로.


창고에 버려져 있던 박스 안에 젊은 어머님 사진이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닭, 어디까지 그려봤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