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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ul 08. 2022

그 곳에 마음을 두고 왔다- 에든버러

여행이야기

한 도시에 일주일쯤 머물거나 여러 번 방문하다 보면 좋아하는 장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매일 새로운 곳을 가도 부족한 대도시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끌리는 곳이 생기게 된다.

작은 마을은 3일만 있어도 단골집을 만들 수 있다.

한달살이를 하면 또 다른 게 보이고 일 년쯤 살아보면 잠깐 머물렀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과 이미지를 갖게 되겠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 수록 여행은 느려지고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다.

짧은 시간에 많이 보고 빠지는 여행에 흥미를 잃은 지는 오래다.


​터키 이스탄불에 가면 리틀 아야 소피아 모스크가 있다.

블루모스크도 아름답고 소피아 성당도 좋았지만 어느 날 리틀 아야 소피아 모스크 2층, 부드러운 양탄자 위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지극히 평화롭고 편안한 휴식을 취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자리에 내 마음 한 조각을 놓고 왔다. 나중에 다시 찾으러 가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트레치아코프미술관이 있다.

다시 모스크바를 가게 되면 거기 내 심장을 사로잡은 그림, ‘앉아 있는 악마’ 앞에서 오래 머물 것이다.

깊고 공허한 슬픈 악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신과 악마에 대해, 선과 악에 대해, 사랑과 상실에 대해 내 오랜 질문을 다시 소환해 볼 참이다.

조지아에 가면 다시 카즈베기 산에 올라 구름이 앞산에 그리는 그림을 넋 놓고 바라보겠지.

파리에 다시 간다면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으로 달려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밝게 빛나던 북두칠성을 보고 세느강변을 오래 걷다가 노트르담 성당 앞 어디쯤에 오래 앉아 있겠지.

다합의 바닷속으로 다시 뛰어들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 바닷속에 내 마음 한 조각이 반짝거리며 유영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제주 종달리에 가면 내가 그렸던 퐁낭이 있다. 오랜 시간 공들여 그렸던 손끝의 감각까지 더해져 종달리를 생각하면 그리움으로 가슴 한쪽이 저릿하다.


​에든버러도 일주일 정도 머물다 보니 자주 발걸음이 옮겨지는 장소가 생겼다.

들어가 보지 않은 에든버러 성 왼편 계단길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성을 끼고 걷다 보면 작은 성당과 성당 옆 무덤을 만난다.

호젓한 무덤가를 거닐다 방향을 바꾸면 성이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작은 공원에 이르고 거기 아주 근사하게 생긴 분수 앞에 앉아 한가로운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실실 미소가 나왔다.

공원에서 나와 계단을 올라 도로로 나가면 워터스톤이란 서점이 있다.

그 서점에 성이 한눈에 보이는 2층 창가에 카페가 있다.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 딱 좋았다.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커피나 스콘을 먹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보물찾기 하듯 책들을 떠들어 보았다.

에든버러를 떠나기 전 날 좋아하는 장소를 다시 돌며 가벼운 드로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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