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순영 Jul 06. 2020

시동생의 밥상

사노라면


일요일 저녁을 준비하는 시동생이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트에서 사 온 강된장 소스 봉지가 주방에 나와 있었다.
언젠가부터 시동생은 부쩍 시중에 나온 소스를 이용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순두부찌개는 순두부 소스, 된장찌개는 강된장 소스에 시판 된장 반 스푼, 부대찌개는 부대찌개 소스.
어제, 저녁으로 먹은 해물탕은 재료에 따라온 해물탕 소스를 넣어 끓인 거였다.
이렇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는 건 아니다.
소스만 시판 소스를 썼을 뿐 들어간 재료는 좋은 것을 듬뿍 넣어 제법 맛이 나게 만든다.
문제는 내가 소스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데 있다


“전처럼 육수 내서 된장찌개를 끓여주면 안 될까?”

“안 돼요.”

“난 소스 넣어 끓인 된장찌개가 정말 싫은데.”

시동생이 오랜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와 주말 밥상을 책임지게 된 이후로 시동생이 해준 음식에 불만을 제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맛이 없다거나 먹기 싫다거나 하는 말을 한 적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건 요리를 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남편과 나는 시동생이 해준 것은 뭐든 맛있게 먹는다. 시동생이 요리를 제법 하기 때문에 실제로 맛도 있다.
그럼에도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장보기 전에 미리 얘기를 한다.
사실 시동생은 주말 메뉴에 내가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나 때문에 바뀌게 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래도 가급적 내가 부탁한 것을 해주려고 한다.

​시동생의 요리는 성공한 메뉴의 반복 재생인 경우가 많다.
어느 한 가지를 우리 부부가 맛있게 먹으면 그 메뉴를 자주 상에 올린다.
이를테면 숙주를 넣어 볶은 오리고기를 맛있게 먹으면 다음 주에도 같은 메뉴가 올라온다.
물론 숙주를 넣어 볶은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약간의 변화를 주기는 한다.
시동생은 특히 백숙을 좋아한다. 잘 삶은 닭고기는 건져서 소금에 찍어 먹고 국물은 국처럼 밥과 함께 먹는데 나는 백숙보다 닭죽을 좋아한다.
시동생이 백숙을 하는 날이면 나는 옆에 서서 내가 먹을 닭죽을 따로 끓인다.
2 주 연속 닭백숙이 올라오면 그다음 장 보러 갈 때 이번 주 닭은 빼 달라고 주문한다.
3주 내내 백숙을 먹는다는 것은 백숙에 대한 모독이다.
자고로 백숙은 어쩌다 먹어야 맛있다.

이런 때는 차라리 주말 밥상을 내가 준비하고 싶다.
남편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준비해서 둘이서 오붓하게 먹으며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다.

​시동생에게 주말 밥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 전 날 장을 보고 주말 네 끼를 차려내는 일은 적어도 자신이 그저 놀고먹기만 하는 게 아님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스스로 중요한 한 부분을 맡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의식과 같다.

주 중에 자신의 밥상을 알아서 준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그걸로 형수인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한때는 점심을 차려 자고 있는 시동생을 깨워 밥을 같이 먹었던 적도 있다.
남편보다 시동생과 같이 먹은 밥이 더 많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한 집에 같이 지낸 시간으로 따지면 남편은 평생 시동생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녀석은 우리와 같이 동거할게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는데 내 말이 마음에 걸렸던 시동생이 한 마디 한다.

“실은 제육볶음도 소스로 하려다가 말았는데...”

“내가 아직은 위암 환자라서 아무래도 소스로 만든 음식은 신경 쓰여. 내가 평소 아무거나 해 먹는 것 같아도 나름 가려서 먹고 있는 거거든.”

‘암 환자’ 란 단어를 꺼낸 것은 내 상태를 확인시켜 주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으나 별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내 건강을 위한 밥상을 시동생이 책임질 필요도,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먹고 싶거나 필요한 것은 내가 움직여 해먹으면 될 일이다.
가리지 않고 먹게 되었고 먹는 양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위암 수술받은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내 몸은 늘 “조심해” 하는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무시할 수가 없다.
주 중에 내가 알아서 챙겨 먹는다 해서 주말 밥상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까닭이다.

​집안에서 시동생의 설자리를 만들어 주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은 중요하다. 앞으로도 주말 밥상은 시동생의 일이 될 것 같은데 나는 소스로 만든 음식이 싫으니 방법이 없다.
싫다고 말하는 수밖에.
그래도 안 되면 나는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된다.
어려운 일은 아니나 이왕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 밥상인걸.

​요즘은 종종 토요일이나 일요일 점심 한 끼는 준비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시동생이 늦잠을 자는 사이 만둣국이나 콩국수, 비빔밥이나 볶음밥 같은 메뉴로 가볍게 점심을 먹으며 남편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때론 산책 삼아 나갔다가 점심을 사 먹고 들어오기도 한다.
시동생과 남편과 나, 우리 셋이 살아가는 방법.
익숙하면서도 늘 새롭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다음 주말에는 카레 우동를 해달라고 해야겠다.

카레우동은 시동생이 아주 잘하는 메뉴다.
단 이번에는 돼지고기는 빼달라고 해야겠다.
이 녀석, 내가 고기가 든 카레보다 갖은 야채가 듬뿍 들어간 카레를 더 좋아하는 줄 아직도 모르고 있다니, 이건 순전히 나의 불찰이다.

작가의 이전글 물의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