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순영 Jul 07. 2020

그 아침의 추위

여행이야기 - 러시아


밖의 온도와 관계없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 내부의 온도는 평균 25도가 넘었다.
인도에서 산 바지를 입고 반팔티를 입고 있어도 덥다고 느낄 정도였다.

열차 안과 밖의 온도차가 4,50도를 넘나들었다.
나와 일행들은 10분 이상 정차하는 역에 열차가 서기라도 하면 입던 옷에 겉옷 하나만 걸친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갑작스러운 온도차에 코가 매캐하고 뺨이 얼얼해도 답답했던 열차 안에 있다 내리면 그 찬 기운에 정신이 번쩍 들고 상쾌함마저 느껴졌다.
그랬으니 밖의 온도가 영하 20도, 영하 30도를 가리켜도 잠깐 내려 열차 밖을 서성일 때엔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리 없었다.
열차 안에서 우리는 종종 한국이 더 추운 것이 아니냐는 둥, 러시아가 춥다고 하더니만 생각보다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는 둥의 말을 농담  반 진담 반 나눴다.
이왕 겨울에 러시아에 왔으니 펑펑 내리는 눈도 맞아보고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한 추위를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열차 안의 온도에 답답해하며 우리가 머릿속에 상상하던 추위는 다분히 비현실적인 데가 있었다.
첫날 열차에 오르기 전 하바롭스크 시내를 거닐며 이미 머리가 얼얼할 정도의 추위를 경험하고 난 후였음에도 그랬다.

5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차 안에 있다가 이르쿠츠크에 내린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내릴 채비를 하면서 벗어 두었던 옷들을 껴입었다.

내리기를 기다리며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덥다'였다.
이 날 우리 일행은 역 앞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리스트 비앙카 선착장까지 간 다음 배를 타고 포트 바이칼로 건너가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만 했다면 택시에서 배, 다시 택시로 이어지는 매우 편안한 이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럴 리가 없는 뻔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작은 순조로웠다.
밖은 여전히 어둡고 새벽의 찬 기운으로 가득했지만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바로 올라탈 수 있었다.
택시는 푸른 새벽을 뚫고 선착장까지 단숨에 달렸다.
우리 일행 대부분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의 인솔자는 택시 안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금은 예측했던 것 같다.
배를 타기로 되어 있는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져 택시에서 내린 후 선착장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을 택시 안에서 확인 한 인솔자는 모르긴 몰라도 이때부터 적잖은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택시에서 내린 시간은 대략 오전 8시쯤, 배는 오전 9시에 와서 30분 정도 머물렀다가 9시 반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1시간 정도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별것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곳이 러시아가 아니고 , 1월 중순이 아니고 하필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의 새벽이 아니고,

기다려야 하는 곳이 사방에 구멍이 뚫려 강바람 숭숭 부는 선착장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추위였다.
그 아침 우리는 영하 40도의 찬바람이 불어오는 길가에 내던져진 꼴이었다.
그 추위는 말 그대로 우리를 강타했다.

우린 강펀치를 맞고 휘청거린 다음 피할 새도 없이두 번째 세 번째 펀치를 연타로 맞고 나서야 부랴부랴  방어에 들어간 초짜 복서 같았다.

아니 사실 그보다도 못했다.


아래에 기모 청바지 하나만 입고 있었던 일행도 있었고 히트택 레깅스 하나만 신고 있었던 일행도 있었으며 신고 온 신발이 방한이 잘 되지 않는 일행도 있었고 유독 추위에 약한 일행도 있었다.
핸드폰은 꺼내자마자 바로 방전이 되었고 카메라 배터리는 얼어서 전원이 켜지지 않았고 입김이 안경알에 얼어붙어 결국 나는 안경을 벗어야 했으며 서둘러 배낭에서 꺼내 몸에 붙이기도 하고 신발에 넣기도 했던 핫팩은 제 기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는 추위를 피하는 펭귄처럼 동그랗게 둘러서서 맴을 돌기도 하고 둘셋씩 구석에 모여 발을 동동거려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계속 몸을 움직이기도 하며 생각건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아침 추위와 맞섰다.


우리 일행 중 가장 추위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인솔자였다.

 그는 오기 전 신으려고 했던 방한화가 망가져 다른 신발을 신고 왔는데 그 신발이 바닥의 찬 기운을 거의 막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발가락이 사라졌음에도 계속 걷고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설명하자니 대략 이러한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누군가에 의해 수다와 웃음이 계속 이어졌고 몇 명은 거의 기적처럼 핸드폰과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까지 찍는 신공을 부렸으니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30분 정도 그 상태로 밖에서 기다리다가 나머지 30분은 선착장 옆에 있던 박물관에 들어가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결국 추위를 참을 수 없었던 인솔자가 아직 문을 열기도 전인 박물관 뒷문을 두들겨 사정을 말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직원은 추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으리라.

물론 나는 이때 인솔자의 마음속엔 오로지 나머지 일행을 걱정하는 한 가지 마음밖에 없었다고 믿는다.자신의 잃어버린 발가락이 돌아오리란 기대는 그저 사소한 기대에 불과했을 것이다.

9시가 가까워지자 쇄빙선이 얼음을 가르며 먼저 나타났다. 그리고 뒤이어 우리를 태우고 갈 배가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선실이 따로 없는 바지선이어서 여름이라면 밖에 서서 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랬다면 우리는 마지막 강타를 맞고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열 명쯤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선실에 몇 명의 러시아인과 함께 몸을 구겨 넣을 수 있었다.
그 아침의 추위는 배에서 내리고 네 명씩 택시를 타고 숙소에 들어가고 난 후에야 끝이 났지만 앞선 일행을 태우고 간 택시를 기다렸다 나중에 타고 온 네 명의 일행에겐 좀 더 긴 시간의 인내가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그 새벽의 추위는 어찌 되었든 견딜 만한 것이었다.

물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밖에 있어야 했다면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는 내내 속으로 웃고 있었다.

몸의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종종거리면서도 속으로는 환호를 하고 있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상상만 하던 무언가를 드디어 맞닥뜨렸다는 즐거움에 내부 어딘가가 계속 간질거렸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 앞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낯선 감각 앞에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가 촉수를 세우고 꿈틀거렸다.
그 아침, 코끝으로 싸하게 들어오던 차가운 공기의 냄새가, 뺨을 얼얼하게 때리던 찬바람이, 파랗게 밝아오는 여명이, 눈동자마저 아프도록 시렸던 공기가, 그 새벽 추위와 맞서며 느꼈던 모든 감각 하나하나가,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더 강하게 내 몸과 기억속에 새겨졌다.

기회가 되면 나는 기꺼이 그 아침의 추위 앞에 다시 설 것이다.


한 여름에도 그 날의 추위를 떠올리면 마음이 부르르 떨린다.


2016년 1월 겨울 바이칼
              

작가의 이전글 시동생의 밥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