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시피

_길모퉁이 숨겨진 카페 대전 검은 새끼 돼지

by 도시소묘
‘여긴 모두 자기만의 커피가 있어요. 자기만의 커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커피의 종류는 물론 우유를 더 할 것인지, 어떤 우유를 사용할 것인지, 설탕을 넣을 것인지 감미료를 사용할 것인지, 그 양은 또 얼만큼인지 꼬치꼬치 묻고 고른다. 심지어 물의 온도까지 자기만의 취향에 맞춰 달라고 주문한다. 보는 내내 똑같은 거피를 주문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모든 주문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바리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일요일은 정기 휴무, 토요일 아침 10시 50분 라스트 오더라니. 까다롭기는 휴..

달콤한 아침잠을 걷어내고 토요일 아침 산책길을 나선다. 나만의 커피를 마시며 소중한 휴일을 즐길 준비를 한다. 부스스한 머릿속을 부여잡고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신다. 뜨끈하고 알싸한 커피 한잔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 빈속을 쩌릿하게 겨냥한다. 검은 액체는 곧장 위 속으로 내려갔고 이내 머릿속이 말끔해진다.

이렇게 주 1회 씻김굿을 한다. 그리고 가슴에 훈장을 단다.


주말 아침 에스프레소 한잔은 나만의 생활 레시피다.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레시피는 단순해진다. 화려한 시럽이나 크림이 들어가기 보다 원두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 각설탕 1개를 넣은 더블 에스프레소를 마신 후 따뜻한 물을 마시며 여운을 즐긴다. 진득한 커피 한잔은 쓰고 달다. 불필요한 첨가물은 빼고 본질의 풍미에 집중한다. 내 삶이 그러기를 원하는 것처럼.

토요일 아침 커피는 단순해지고 싶지만 복잡해지고 마는 나를 되돌리려는 기도다.


요즘 트랜드의 핵심은 ‘개인 맞춤형Customized’의 시대라는 것이다. 남과의 차별화는 물론 자신만의 고유성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란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따지고 보면 삶의 절반을 넘긴 이들이 은연중에 바라는 바다. 이제 와 온갖 유행의 옷을 걸치려니 몸이 버겁고, 화려한 잔치보다 내가 원하는 담백한 한 끼를 원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의 취향을 아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고유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작은 것에서도 나만의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찾아 나선다.

이름마저 당황스러운 카페 ‘검은 새끼 돼지’는 들어서자마자 좁은 공간에 이내 어색해지고 만다. 손님의 공간보다 바리스타의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분명 이곳은 바리스타의 공간인 것이다. 바리스타의 공간에 방문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와 눈 맞춤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색함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도 된 마냥.

바리스타의 넓은 공간은 그곳이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의 무대'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그 무대에 초대된 관객인 동시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의 요구를 순순히 제출하는 손님인 셈이다. 나의 취향이 온전히 수용되는 만족감 뒤에는 그 요구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누군가의 공간에 내가 ‘방문했다’는 미묘한 긴장감도 따른다. 그리고 긴장감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즐거움이 내 것이 되는 순간 적당한 형용사를 찾기 어려운 행방감 마저 든다.

차가운 스테인리스와 단단한 대리석 앞에 잠시 발을 멈추고 작은 잔에 집중할 때, 비로소 '정지된 시간'을 얻게 된다. 시끄러운 유행과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의 취향이 완벽히 반영된 뜨거운 액체의 본질을 마주하는 시간.

까다로운 요구를 완벽하게 수용하면서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무심함. 이것은 성숙한 위로다.

그 한 모금은 지난 세월의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 “

스스로에게 긍정하는 따뜻하고도 강렬한 힘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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