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구독하면서 그동안 보고 싶었거나 관심이 갔던 옛 영화들을 찾아보고 관람하는 중이다. 그렇게 휴일 중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물 같은 영화들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감정에 마음이 복잡해져 힘들어진 적도 여러 번이다. 어떤 영화는 쉽게 잊히지만 어떤 영화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잊히지 않기도 하지만 문득문득 떠올라 생각에 잠기게도 한다. 다 잊은 듯하다가도 다시 떠오른다. 좋은 영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영상과 이미지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잔상은 뇌의 깊은 저장고에 새겨지는 그림이다. 새겨진다는 것은 잊히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기에 좋은 영화를 고르기 위해 다양한 정보 습득 과정을 거쳐 신중히 골라 보는 편이다.
[그림1. 영화 '공기인형'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공기인형’을 보았다. 배두나라는 한국 배우가 출연한 영화로 2010년 한국에서도 개봉하였다. 주인공 배두나가 ‘가장 힘들게 촬영한 작품 중 하나다’라는 어느 인터뷰와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톱클래스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영화를 선택하게 하였다. 영화 ‘공기인형’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공기인형 ‘노조미’에게 어느 날 마음이 생겨버렸고, 마음이 생겨버린 공기인형은 인간으로서 평범한 삶을 그리며 눈물짓지만 진심을 외면당한 채 쓰레기장에서 죽어간다. 영화 속에는 ‘노조미’의 독백이 자주 등장하는데, 혼잣말로 되뇌듯 말하는 낮은 목소리는 파스텔톤의 예쁜 화면 구성과 대비를 이루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가슴속이 텅 빈 사람들의 노리개로만 취급되지만 진짜 마음을 가진 ‘노조미’. 그 공허함과 쓸쓸함이 느껴져 보는 내내 마음이 쓰리다.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심을 가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림2. 고야 '인형인간']
영화 ‘공기인형’을 보고 난 후 떠오른 한 장의 그림이 있다. 고야의 ‘인형 인간(1791~92)’이다. 밝고 화사한 로코코풍 풍경 속에 4인의 천진난만한 소녀들이 어여쁜 꽃미남과 보자기로 신나는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몸짓이 뭔가 좀 이상하다. 마치 타인의 시선에만 관심이 있고 정작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현대인의 꼭두각시 같은 삶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근대적 예술가(artist)의 역사를 연 인물로 지칭되는 고야는 18~19세기 초 스페인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우리에게 자의식을 가지라고 작품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림마다 집단주의와 이념 몰이에 대해 비판하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삶을 사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그의 예술 언어는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SNS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지표로 충분하다.
좋은 영화나 그림, 문학 작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어떤 상황을 만날 때 책의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책을 덮은 후,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그것들은 휘발되어 멀리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사실 그것들은 늘 내 주변을 서성인다.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내 주위를 서성이며 때때로 나를 각성하게 하고 그 후 나의 내부로 스며들어 내 한구석에 머무른다. 그리고는 마침내 나의 일부가 되어 나의 말이 되고, 내 생각이 된다. 결국은 내 삶의 양식이 된다.
좋은 예술작품의 경험들은 우리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는 장이 되고, 그 시간이 되며, 그리고 자기 구성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술 경험은 곧 삶의 자기 형성을 돕는 최적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