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려 공주시에 들어섰다. 소복이 내린 눈으로 단장한 공산성이 반갑게 맞이한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길 건너 공간에 서둘러 주차를 마치고 ‘공주문예회관’에 들어선다. 들뜬 마음으로 공연장을 서성인다. 가벼운 발걸음, 객석을 찾아 들어서는 마음은 이미 봄날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불 꺼진 무대를 바라본다.
출연진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장권 구매와 환불을 반복하며 가을부터 두 달여를 기다려 온 공연이다. 주변은 관객들로 가득하다. 빈 좌석 하나 남지 않았다. 커다란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든 사람, 망원경을 챙겨 온 열혈 팬들. 서울로 서울로 문화 향유의 열망을 채우러 떠나던 문화_노마드 (cultural_nomad)들은 오늘 공주시에 모두 정착했다.
무대가 조명으로 화려해지자 모두 숨을 죽인다. 그리고 기다린다. 눈앞에 펼쳐질 문화의 향연을.
뮤지컬 아가사 공주
여기는 뮤지컬 ‘아가사’의 공연 현장이다. 뮤지컬 ‘아가사’는 영국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11일간의 실종 사건을 그린 순수 국내 창작 뮤지컬이다. 2013년 초연을 했다고 하니 10여 년을 이어온 베스트셀러다.
무대의 시간은 1926년 12월 3일, ‘아가사 크리스티’가 스타일스 저택에서의 티타임 후 돌연 실종된다. 그로부터 27년 후 슬럼프에 빠진 천재 작가 ‘레이몬드 애쉬튼’이 반복되는 악몽의 실마리인 자신의 과거 기억을 찾으려 아가사 실종 사건을 다시 추적하기 시작하고, 그녀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티타임을 가진 사람들과 그녀의 미완성 원고 『미궁 속의 티타임』의 내용을 토대로 ‘레이몬드’가 그 시간을 추리한다, 그 격정적인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진다.
화려한 무대 설치와 음향 다양한 조명 효과, 9명의 출연진은 지방 소도시의 작은 무대를 잊게 할 만큼 흡입력이 있다. 역시 아가사역의 '이정화'님의 카리스마는 시간을 잊게 한다. 클라이막스를 지나 커튼콜을 마지막으로 총 135분의 시간이 흘렀다.
공연이 끝난 무대를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퇴근 시간과 맞물릴까 발걸음을 서두른다. 하지만 산 넘고 물 건너 하루의 시간과 맞바꾸어 서울까지 공연 관람 여행을 가던 어느 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여유로운 발걸음이다. 오늘 함께한 그들도 같은 생각이리라.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모든 현상은 에너지의 장(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맛있는 음식을 찾고,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고, 예술작품이 있는 곳을 향해 떠나는 이유다. 그 후 스스로 무엇을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는 새로워진다. 에너지 발현의 장을 찾은 우리는 각자 내면의 힘을 찾고 감각적 쾌락 너머의 쾌락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도시문화의 큰 흐름은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의 전환이다. 그 흐름은 각자 개성의 발견, 삶의 질의 중요도 상승과 사회적 소비로의 전환, 골목길의 인기, 레트로 열풍 등의 그 결과로 나타났다. 이제 로컬(local)에도 활력 있고 문화적으로 다각화된 기획이 필요하다.
지방에 거주하는 문화 소비자들은 이미 양질의 문화를 찾아 떠다니는 문화_노마드적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역으로 찾아온 양질의 문화 행사를 기꺼이 소비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지역에 정착하게 만들 것이다. 생산자들이 한 곳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은 향유하는 문화소비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