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가의 개인적 거주 연대기다. 동시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거주했던 공간을 통해 풀어가는 여성 성장 서사다. 집이라는 주거 공간을 통해 우리 사회를 알아가고자 하며 동시에 여성의 자리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묘사하고 있다.
저자에게 집은 나를 채우는 공간이며 오롯이 나를 위한 성장의 공간이다. 그리고 비록 몸은 집 안에 있으나 사회 속 일원으로써 독립하기 위한 초석을 만드는 열망의 공장이 된다.
대구에서 태어나 성장한 여성은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의 재개발 주거지역을 돌며 거주 공간을 찾는다. 주거 환경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몸서리친다. 부유한 동네에 살았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점점 작은집으로 이사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반추되고,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떠올린다.
아등바등이라는 표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양새라는 의미였다.돌이켜보면 아등바등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비참한 일로 여기면서 건성으로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나의 몫까지 아등바등 살았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몸부림을 밟고서 서울행 기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집을 구하고, 글을 썼을 것이다.내가 지낼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_하재영_라이프앤페이지
작가 지망생인 동시에 지방 출신인 여성은 거주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그에게 거주 공간은 일터인 동시에 안전이 담보되어야 하는 곳이며 자신을 창조해나가는 삶의 중심이라는 것을. 오래된 빌라를 얻어 셀프인테리어를 감행하고 자신에게 최적화된 공간으로 만들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진다.
‘집’은 여자가 가사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공간, 독립과 자유의 실현을 억압하거나 최소한 보류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그녀가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 지적 갈망을 충족하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여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끊임없이 읽고 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_하재영_라이프앤페이지
주거 공간에 대한 개인적 서사는 결혼과 여성사로 이어진다. 가족과 집, 사회적 계급으로서의 집, 여성과 집, 가부장제와 여성, 여성의 자리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간다. 미뤄놓은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개인의 이야기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만나 풍성한 식탁이 된다.
신혼집을 방문한 손님들은 깨끗한 집을 보고 언제나 나를 칭찬했다. 남편을 칭찬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성격이 정말 깔끔하시네요.’ 그렇게 말할 때 손님들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나-여자-아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집이 더러워진다면, 더러운 집이 타인에게 노출된다면 나에 대한 칭찬은 나에 대한 험담으로 바뀔 것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_하재영_라이프앤페이지
장소는 삶의 배경이 된다. 장소를 선택하는 일은 내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행위다. 그곳을 배경 삼아 나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나의 정체성마저 형성된다. 이렇게 삶에서 장소는 중요하다.
저자는 아파트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내가 성장하고 내 삶을 그려 나가는 용도로써 집을 구한다. 많은 사람이 정원이 있는 주택에 살고자 하는 꿈을 꾸지만, 정작 집을 구할 때는 그 꿈을 내려놓는다. 주택을 구매하려는 이들에게 부동산 전문가들은 아파트를 권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아파트는 제2의 현금이라는 조언을 듣는다.
우리에게 집은 언젠가부터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자산의 개념이 되었다. 그러한 면에서 저자의 선택과 생각에 박수를 보낸다.
내 삶을 누리고 인생을 그려 나가는 진심의 공간으로서의 집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리고 여성의 자리에 대해 고민하는 이에게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