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안녕/하야시 아키코/ 한림출판
오래전 읽었던,
이미 20년이나 지난 그림책의 한 장면이 어제 본 듯 눈앞에 떠오르는 그림책이 있는가 하면
읽다가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 없어 덮어 두었다가도 한 구절이 이제 서야 마음 어딘가에 메시지를 남길 때가 있으니 말이다.
20여 년 전 지금은 사라졌지만 우리 동네 중심에는 그림책 전문 서점이 하나 있었다. 각국의 그림책을 만날 수 있었던 그곳은 초보 엄마들의 아지트였다. 작은 그림책 서점에서 얻은 행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날도 책방 주인이 골라주는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추천받은 책은 하야시 아키코의 ‘달님 안녕’이었다.
‘달님 안녕’은 전체 48페이지 분량의 내용 중 내내 달님 안녕, 달님 안녕을 반복한다. 다음 페이지에도 또 다음 페이지에도 빙그레 웃는 모습의 달님이 등장한다. 달님은 빙그레 웃음 짓고 우리는 안녕을 반복하며 달님과 눈을 맞춘다. 동그랗고 환한 얼굴에 장난기 서린 달님의 얼굴은 빙그레 웃음 짓게 하다가도 어느새 그저 고요히 그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단순하게 스토리만 본다면 만남과 인사의 순간이 책 내용의 전부다. 그림책이라는 것을 접한 초보 엄마 시절 ‘달님 안녕’을 만난 나는 단순한 내용과 스토리가 주는 당황스러움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그날 이후 매일 밤 함께 이 작은 책을 읽었다. 읽었는데 또 읽어 달란다. 읽고 또 읽는다. 다음날도 읽고 또 읽는다. 그림을 보고 또 본다. 읽을수록 아기와 나의 눈은 마주하는 횟수를 더한다. 눈을 마주하고 서로를 보며 웃음 짓는다. 그림 속 달님의 따뜻한 미소를 흉내 내 본다. 아기는 까르르 웃는다. 마침내 달님은 안녕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어느새 아기도 스르르 잠이 든다.
그래! 그렇구나, 그림책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그림책은 아가와 엄마를 연결하고 서로의 꿈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우리를 연결하고 서로의 꿈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거구나. 꿈속으로 찾아들어 놀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격의 없이 놀 수 있게 하는 힘은 그림책에는 글뿐 아니라 그림이 함께하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눈으로 보고 글을 통해 들리는 것이 그림책의 귀중한 역할이다. 글로써 다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림이 품고 있다. 글을 품은 그림이 만국공통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림으로 표현된 이야기는 연령과 계층을 넘어서는 울림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다.
그림책이야말로 마음속 축제의 현장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그림책을 품는다.
시대는 점점 더 빠르게 내일로 향하고 신작이 또 하나의 신작을 밀어낸다. 빠르게 변하는 속에서도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매일밤 잠들기 위해 집어 들던 그림책 한 권과 함께 한 이야기들이다.
아이는 그림을 보고 엄마는 글을 읽는다. 그림을 보며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침대 머리맡에서 어느새 작은 무대가 펼쳐진다. 글과 그림이 함께하는 그림책이야말로 아이와 엄마의 마음속 공연장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고 곧 해외로 떠난다. 밤이면 함께 보던 그림책 속 ‘달님’의 환한 미소는 쉽지 않을 그 길을 밝혀 줄 것이다.
그림책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 한편에 글로는 다 하지 못할 따뜻한 온기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