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등대/ 소피 블랙 올/ 비룡소
다음 주면 서점이 문을 닫는다. 3년간의 영업을 종료한다. 그럼에도 서점에 모여 우리는 오늘도 함께 책을 읽는다. 마지막날까지 독서모임을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추천하는 책을 읽는다.
소피 블랙 올의 '안녕 나의 등대'를 낭독한다.
등대지기는 넓은 바다 끝자락에 솟은 작은 바위섬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솟은 등대를 홀로 지킨다. 깊은 밤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을 위해 바다 멀리 불빛을 비춘다. 배들이 길을 잃지 않게 돕는다. 해 질 녘부터 새벽녘까지 불빛을 비춘다. 배들은 뱃고동으로 인사를 한다. 등대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지만 외롭지 않다. 등대지기는 밤중에도 몇 번이고 일어나 등대를 살피고 램프를 돌리는 태엽을 감는다. 부지런히 등대의 렌즈를 닦고, 심지를 다듬고 석유를 채운다. 그리고 오늘도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멀리까지 불빛을 비춘다. 배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여기예요!
... 여기예요!
..... 여기예요!
....... 여기 등대가 있어요!
바다가 큰 숨을 쉬듯 바람이 불 때, 거친 파도가 등대를 삼키려 할 때, 안개가 낀 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바다가 꽁꽁 얼어 하얀 카펫이 되었을 때도 등대지기는 등대를 지킨다. 작은 등대섬에서 자신의 삶과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등대지기는 등대를 떠나게 되었다. 떠나야만 했다. 더 이상 석유를 넣는 등대 램프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등대는 심지를 다듬을 필요도, 렌즈를 닦을 필요도 없다. 등대지기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 등대지기는 바다 건너 육지에서 등대를 생각한다. 등대의 불빛과 파도치는 바다, 뱃고동 소리, 등대섬에서 생활을 떠올린다. 새로운 삶을 계획한다. 하지만 등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림책 ‘안녕 나의 등대’는 지금은 생소한 등대지기의 삶과 일, 그리고 그 역사를 인포그래픽을 활용하여 설명하듯 잔잔하고 세밀하게 나열하고 있다. 등대지기의 일과와 어느 날 일어난 사고와 그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표정하지만 다정한 미소를 지닌 등대지기는 자기 삶과 일, 시간의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묵묵히, 하지만 열정을 다해 일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성실한 가장의 모습도 엿보인다. 자신의 등대는 사라지고 쓸쓸히 돌아서는 그의 표정에서 얼마나 자기 삶을 사랑하는지 읽을 수 있다.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림이 안내자가 되어준다. 그림 속 바다 위에 ‘여기예요!, 여기예요! 여기예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라는 글자를 반복적으로 삽입하여 마치 등대지기가 등대 불빛을 통해 외치는 듯한 이미지를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글 또한 그림 속으로 스며들어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지난가을, 2022년 10월 지점장으로 운영하던 ‘북소리책방 세종점’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상황을 무사히 넘기는가 싶었지만 이내 스러지고 말았다. 이대로만 해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운영 상황은 점점 좋아졌지만, 그동안 본사의 재정 상태는 악화하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장은 변화해 있었다. 끝내 지점을 닫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 소식은 나에게는 이 도시와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길지 않은 신도시의 역사에 작은 길을 내었던 서점이다. 방문객이 없는 서점에서 9개의 독서 모임을 운영했다. 첫 마음은 고정적인 인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하도록 마련한 자구책이었다. 하나 둘 모인 사람들이 매주 50여 명이나 되었다. 사람들은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해 서점을 방문했다. 사람이 모이고 책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 서점지기인 나 또한 서점에 모임 사람들로 인해 살아갈 이유를 찾아갔다.
그럼에도 서점은 문을 닫았고, 이제 그 자리는 키즈카페가 되었다.
마침내 지도에도 없는 곳이 되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등대가 있다.
등대마다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용기와 모험이 담긴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의 이야기도 함께 있다.
나를 살리는 이야기,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야기들. 하나하나 소중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서점은 도시의 밤을 밝히는 등대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모으고 풍성하게 일으켜 살아가는 힘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삶을 밝게 밝혀나가는 역할을 한다. 서점은 문을 닫았지만 우리는 언제나처럼 책의 바다를 항해한다.
그리고,
다시 도시를 밝히는 등대가 하나둘 밝혀지는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