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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Mar 14. 2019

어떻게 달려야 하나요

도로주행에서 ‘올바르게 달리는 법’을 배우다

내 인생에 '운전면허'라는 단어는 없을 줄 알았다. '공간지각력이 선천적으로 부족하다', '내 목숨도 중요하지만 남의 목숨도 내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인도주의자로서 No 운전은 최선의 선택이다', '차가 없는데 운전면허가 있어서 뭣하겠느냐'라는 갖가지 이유들로 한 해 한 해 미뤄왔거늘. 올해는 드디어 8년 동안 꾸역꾸역 지어내던 핑계 레퍼토리가 고갈된 덕에 '운전면허 따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더랬다.(그나저나 무려 8년이나 버틴 나도 참 징그럽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천적 운전 능력 부족'으로 운전 DNA가 1도 없을 것 같았던 나는 뜻밖에도 운전면허 따기 프로젝트에 돌입하자 의외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필기는 물론이거니와 '악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T자 코스가 추가된 기능 시험 모두 한 큐에 통과를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기능 시험은 만점으로 통과하는 기적을 이뤘다.(혹 은근한 자랑같이 느껴지셨다면, 정확히 보셨다.)


의외로 술술 풀리는 운전면허 따기 프로젝트에 이미 나는 나 스스로를 "베스트 드라이버"라 칭했다. 그러나 호기롭던 애송이 베스트 드라이버는 도로주행을 마주한 순간 1주일 천하로 끝이 나고 말았다. 다른 차량 없이 시속 5km 이하로 달리던 기능 시험장과는 달리 도로에서는 체감 속도 시속 140 같은 40km 이상을 유지해야 했으며, 나와 차와 코스만이 존재했던 연습 주행장과는 달리 실제 도로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연습용 차량 따위 배려해줄 여유는 없다! 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사회의 쓴 맛(?)을 다시 한번 보게 되어 운전대를 잡고 덜덜 떨고 있는 어린양이 안쓰러웠는지 조수석에 앉아 계시던 강사님이 온화한 목소리로, 마치 비책을 알려주듯 한 마디를 툭 던지셨다.


도로에 나왔을 때는 두 가지만 기억해요.
하나, 조급해하지 말 것. 둘, 멀리 볼 것. OK? 출발!


하나도 안 OK였지만 출발하라니 일단 출발...!




01. 조급해하지 말 것


어찌어찌 출발한 후, 초반에는 체감 속도 140 같은 40km를 유지하며 조심조심 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탄 노란 연습용 차량 좌우로 총알 같은 속도로 휙휙 지나가는 차들이며, 때때로 뒤에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 답답함을 호소하며 보란 듯이 나의 노랑이를 엄청난 속도로 추월하는 화물 트럭 등은 서서히 나와 노랑이를 옥죄어왔고, 이내 그들의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런 불안감은 초보 주행자의 마음을 더더욱 조급하게 만들었고, 40에서 시작했던 계기판의 속도는 어느새 60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조급해지는 마음과 비례하여 점점 올라가던 속도는 결국 우회전 코너링을 할 때도 아랑곳 않고 러시했으며, 식겁한 강사님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속력을 낮추지 않았다면 도로가 아니라 보도 위를 달리는 대참사를 맞이할 뻔했더랬다.

 

그렇게 나는 강사님께서 출발 전 비책처럼 알려주신 '도로에 나갔을 때 꼭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진리' 중 첫 번째를 몸소 체감했다.


조급해하지 말 것.
남과 비교하며 조급해지다 보면
결국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경로를 이탈하기 쉬움.  
Photo by Joey Kyber on Unsplash


02. 멀리 볼 것


호된 가르침을 피부로 느낀 후부터는 50km 안팎 정도의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하며 도로를 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의 위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겨우 속도의 늪에서 벗어났더니만, 이번에는 차가 자꾸 한쪽으로 치우치는 불가사의에 빠져버린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차가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실선을 물고 달리기 쉽고, 실선을 물고 달리다 보면 게눈 감추듯 점수가 깎여나가게 된다. 그 말인 즉, '학원 돌아가시면 다음 재시험 일정 잡고 가세요'를 들을 확률이 120%라는 얘기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차로 정가운데로 달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코 앞 도로에 시선을 두며 차를 가운데에 똑바로 위치시키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결과 나의 노랑이는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차로의 정중앙을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더 크게 터지고 말았다. 코 앞의 도로만 본 탓에 앞에 지나가는 차며, 사람이며, 심지어 신호까지 못 보고 지나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건 점수가 깎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실격 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도로에 나갔을 때 꼭 기억해야 할 진리'를 깨우쳤다.


멀리 볼 것.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면
정작 꼭 봐야 할 것,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을 놓치기 쉬움.




03. 도로주행과 인생 사이 뜻밖의 교집합


도로에 던져지기 전, 가련한 어린양에게 툭 건네어진 강사님의 말씀은 돌이켜보니 도로주행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또한 적용할 수 있는 '비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삶의 길'에서도 역시 남과 비교하며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조금 느리더라도 내 페이스대로 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잘 도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도로도, 인생도 멀리 보는 게 좋을 듯싶다. 멀리 볼 때 비로소 안보이던 것이 보이고, 진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Photo by Patrick Tomasso on Unsplash




참, 그런 분은 손에 꼽으리라 생각되지만 혹시나 나의 '운전면허 따기 프로젝트' 결과를 궁금해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기에 결과를 살포시 알려드려볼까 한다.


결과는.. 두구두구 X3...


도로주행마저 한 큐에 통과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더랬다. 앗싸, 이제 신분증 두 개다.(역시나 자랑처럼 느껴지신다면, 이 또한 정확하게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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