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길은 내가 다니던 길이 아니었다. 천상에 9년을 살았는데 이런 길은 처음이었다. 기존 길이 음지였다면 이 길은 맑은 날 햇살 같은 따뜻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따뜻함, 그리고 어느 순간 느껴진 주변 풍경. 이상하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산행을 하면 풍경을 보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속도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전에는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르는 데만 신경 썼다. 목적의식만 가지고 정상이라는 목표만 향해 걸었다.
오늘은 속도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 강사님 말씀대로 몇 시간 만에 갔다 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르는 그 자체가 중요하고, 천천히 즐기며 걷는 것이 등산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다.
산에서의 걸음은 평지에서의 걸음과 다르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평지를 걸을 때 1시간에 3km를 간다고 한다. 이 속도에 익숙한 사람들이 산에서도 같은 속도로 걷는데, 이것이 잘못된 방식이라고 했다. 산은 경사진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르다가는 얼마 못 가 지쳐 쓰러진다고 한다.
산을 오를 때는 1시간에 2km를 이동한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걸으라고 하셨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 말이 사실인 것이 이번 산행은 8시간을 했음에도 별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산의 풍경이 머리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어제의 등산은 정말 즐거운 등산이었다고 생각된다.
첫 출발 후 10분 만에 저수지가 나왔다. 집 주변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었나 싶었다. 나중에 아내와 딸과 꼭 함께 와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지나 약 5분 정도 더 들어가자 호숫길 중간 지점의 쉼터에 도착했다. 출발 후 약 15분 지점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매년 이곳에서 이렇게 쉰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기 때문에 몸을 어느 정도 적응시키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네 분의 고인을 위한 추도식을 했다. 그분들도 이곳을 지나며 함께 산행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분들을 알지 못하지만, 그분들이 아카데미를 만들어 주셨기에 내가 이렇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묵념을 했다.
우리는 다시 산행을 시작했고, 폭포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쉬었다. 생각했던 웅장한 폭포는 아니었지만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신기하고 좋았다.
‘저 물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강사님 말씀에 의하면 1년 내내 물이 계속 내려온다고 한다. 특히 비가 오면 더 많이 내려오는데 아주 장관이라고 하셨다. 다음에 비가 오고 난 다음 날 꼭 와 보라고 하셨다.
산은 올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마치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듯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리고 기분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것 같다.
이 아카데미에 들어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물론 졸업까지 갈 길이 멀고, 나는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리 정해 놓고 하는 약속보다 가족 일정 때문에 취소될 수도 있는 ‘갑자기 하는 등산’이 좋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하지만 이런 단체 모임은 약속을 미리 해야 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내 사정을 이해해 줄 리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신기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강사님께서 물으셨다.
“발은 어때요?”
잉? 생각해 보니 등산하는 동안 발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모르겠는데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서요.”
“거 봐요. 안 아프니까 신경을 안 쓰는 거죠. 아프면 계속 신경 쓰여요.”
아— 맞네.
나는 강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신발 끈을 다시 묶고 걸었을 뿐인데, 평생 나를 괴롭히던 만성적인 발가락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내가 가장 하기 싫어했던 ‘배움’과 ‘관계’를 통해, 나는 나를 괴롭히던 가장 큰 불편함을 해결했다. 다음 주 교육도 가기 싫겠지만, 발이 아프지 않은 이 해방감 때문에 나는 또다시 그 강의실로 향할 것이다.
"매주 금요일 밤 9시, 저의 산행과 일상의 기록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