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회식 자리에서 뱉은 한마디 때문에 시작된 일주일

by 온결


필요 없을 줄 알았던 교육이 이렇게 유용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메모지도 필요 없을 거라는 생각에 가지고 오지 않으려고 했었다.


물론 메모지는 저번 회식 자리에서 내가 왼손잡이라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글도 왼손으로 쓰는지를 질문했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양손을 다 쓴다고 말했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양손 중 편한 손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야구할 때는 왼쪽, 복싱할 때는 오른손잡이로, 또 칼을 쓸 때는 오른손으로, 야채를 다룰 때는 왼손으로 상황에 따라 편한 손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글씨는 다르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너무나 많이 맞아 오른손으로 쓰게 되었다.


그러다 수능 기간 중 한번 손에 상처 때문에 잠깐 왼손을 사용했었지만 오래 하진 않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손으로 쓰기보다는 키보드를 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전혀 사용할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글 쓰는 모든 상황이 왼손보다는 오른손에 적합하게 구조가 잡혀 있어 오른손으로만 글을 써 왔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수요일 수업에서 왼손으로 글을 써 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월요일부터는 왼손으로 글 쓰는 연습까지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오른손으로 쓰고 못한다고 할까. 마음이 편치 않다. 수요일 전까지 계속해서 ‘마음 편하게 갖자,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반복하면서도 나는 계속 왼손으로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왼손으로 쓴 글은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이 처음 글씨 연습을 할 때의 모습과 똑같다. 삐뚤삐뚤 아… 이렇게 며칠 연습한다고 될 일이 아닌데. 이런 내가 우습다가도, 남에게 이상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방어기제라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었다.


네 번째 강의가 시작되는 수요일이 되었다. 강사님은 첫마디부터 오늘 내용을 시험 칠 것이니 모두 적으라고 하셨다. 열심히 메모를 해야 했지만, 나는 또 잔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말하듯 공격적인 말투로 수업을 시작하셨으니 적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또 잔머리를 굴렸다.


‘일부러 글을 흘려 쓰자. 아, 저 사람은 왼손잡이라 오른손으로 글을 잘 못 쓰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

이런 내 잔머리에 감격하며 혼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결국 일부러 글을 흘려 썼다. 그날의 글은 모두 흘려 써서 아주 못 알아보게 일부러 적었다. 참, 나이 49살 이게 뭔 짓인가 싶다가도 그렇게 되네 싶었다. 이런 내 행동을 알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댔겠지만, 그들도 나처럼 그런 상황에 처하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나 편한 상태로 생각하며 더 이상 오른손과 왼손에 대한 고민 없이 열심히 글을 쓰며 배우기 시작했다.


두 시간이 너무나 짧게 끝이 났다. 더 알고 싶은 것도 많았다. 강사님 말씀 중에 안전한 장소는 어디인지, 그 장소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위험한 장소는 어디인지, 다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강사님께서는 나머지는 현장 실습이라며 일요일에 와서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참… 또 가야 하나. 이번 실습 산행은 안 가고 싶었는데, 그냥 훈련처럼 상황에 맞게 한 명은 다친 사람, 이동하는 사람, 부목 하는 사람 등 역할을 나눠 상황극을 하고 사진 찍는 것이 전부라는데 굳이 그걸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야 하나 싶었다.


가기 싫었는데 또 가야 할 이유가 생겨 버렸다. 이번 일요일도 딸과 놀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딸의 슬퍼할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쓰였다.





"매주 금요일 밤 9시, 저의 산행과 일상의 기록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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