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예진아,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by 온결

교육을 마친 후 현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니 거실에서 딸이 혼자서 머리를 감았다며 나에게 자랑을 한다. 옆에서 아내가 심통이 나 있다. 내일이 시험이라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교육 때문에 밤 10시가 다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온 남편이 야속했을 것이다. 그런 데다가 오늘은 예진이 목욕하는 날에 아이 숙제에, 그리고 밥 먹이고 목욕까지. 밤 10시가 다 되어가니 점점 더 조급해져 가는데 내가 미소 지으며 들어가니 화가 날 만도 하지.

옆에서 딸이 덩달아 말한다.

“아빠 오늘도 늦게 왔으니까 나하고 게임하자.”

이 말을 하면 안 되는데. 목요일 못 쉬겠구나. 이따금씩 내 딸의 말을 가지고 나는 내일에 대한 점을 본다. 딸아이가 전날 저녁에 10시까지 아무 말 없이 내가 하는 말에 수긍을 하면 그다음 날은 회사에서 차들이 많이 몰려온다.


즉 “예진아 아빠가 내일 일찍 일어나야 돼서 자야 돼”라고 하면 딸이 “응” 하는 식으로 아무런 대꾸가 없으면 그다음 날은 엄청 바쁜 날이다. 그런데 “아빠 늦게 자도 되잖아, 나하고 좀 더 놀자.”라는 식의 말을 하면 그 다음날 회사에 일이 없는 날이다.


내가 하는 일은 자동차 검사로, 우리는 소장님과 나 둘이서 검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한 달에 300대만 차를 받을 수 있다. 이번 달은 지금 27일 목요일로 284대의 차량을 받은 상태다. 그럼 4일이 남는다. 이때 소장님과 내가 서로 나누어 쉬기로 했었는데, 나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소장님은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로 정했었다.


물론 거래처에서 예약을 해달라고 해서 일요일 한 대 때문에 토요일도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금요일은 쉴 수 있을 것이고 토요일도 오전 근무니 나름 좋다고 생각했었다. 쉰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할 일이 있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근로자로서 평일에 쉰다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얼마 전 TV에 〈나 혼자 산다〉에서 김대호 씨가 퇴사를 하고 혼자 집에서 평일에 일어나 집을 나오며 한가로이 거리를 걷는데 얼마나 여유로운지. 남들이 일하고 있을 바쁜 시간에 미소 지으며 거리를 걸어가며 지나가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그런 설렘. 이건 근로자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내 사랑하는 딸이 수요일 저녁에, 그것도 10시가 다되어서 무참히 깨 버린 말.


“아빠 지금부터 나하고 게임하자.”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번 더 말해봤다.

“아빠 자야 되는데.”


속으로 제발 제발 아무 말하지 말고 가만히 수긍해 줘.

“치, 아빠 나빠. 공부한다고 나랑 놀지도 않고 나빠.”

“저리 가.”

“오지 마.”


이런 말이 나오면 안 되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예전 경험을 떠올려 보면 이렇게 말했다가도 예진이가 나보다 빨리, 그것도 11시 전에 잠들면 그다음 날은 20대 이상은 아니지만 15대 이상은 들어왔었다. 내가 하는 검사장이 대형 검사소라 하루에 15대 이상이면 소형 검사하는 곳으로 쳐서 40대 한 것과 마찬가지로 힘들다.


평상시라면 예진이가 제발 말해라 할 정도로 일부러 얘기를 꺼내거나 딸보다 일찍 자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이 편해지니까. 근데 오늘은 일부러 딸을 일찍 재워야 한다. 오늘만은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를 점령하듯, 외적을 물리치는 호국의 영웅이 된 것처럼.


예진이를 재워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딸에게 말한다.

“예진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발 마사지 해줄게. 들어가자.”

“어서.”


라고 하며 방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딸에게 30분간 발 마사지를 해주었다. 지난 20년간 아내에게 해주면서 길러진 내 스킬로 딸을 11시 전에 재웠다. (이것은 내일 최소 15대 이상의 차량이 들어와 일이 많아지게 하기 위한 ‘나의 사투’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웃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쉴 수 있냐 없냐의 문제인데,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어본다.

“그럼 예진이가 일찍 자니까 내일 내 시험은 어떨 것 같아?”


“응, 11시 전에 깔끔하게 잠들었고, 량희 너 공부하는 데 짜증 부리지 않고 조용히 했으니 최상은 아니겠지만 중상 정도로, 생각보다 잘 나오겠는데.”


그 말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잘 될 거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처음 내가 집에 올 때의 표정은 사라지고 미소 짓는다.

작가의 이전글10. 회식 자리에서 뱉은 한마디 때문에 시작된 일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