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오전 11시의 약속, 그리고 나만의 보물찾기"

by 온결


주말 산행을 앞두고 나는 한 주간 나의 등산 일정을 작성했다. 거실에 지도를 펼치고 이번에는 문수산 코스를 정했다. 문수산 어디로 해서 어디로 가볼까를 생각하며 처음 출발지와 정상을 거쳐 다음 하산할 길을 표시하고, 각 코스마다의 거리와 소요 시간을 계산했다. 그날의 날씨를 고려하여 여벌의 옷과 양말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이번 산행에서 먹을 나만의 음식도 준비하며 한 주를 보냈다.


물론 온종일 등산을 할 수는 없다. 아내와 딸과 약속한 시간은 주말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하루는 오전 11시까지 집에 들어오겠다는 조건으로 자유 시간을 얻은 것이다. 물론 이것도 아내의 상황에 따라 취소될 수도 있는 일정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아주 멋진 일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당일 날 가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다음에 다시 가면 되니까.


일요일 오전 6시, 나는 나만의 산행을 위해 준비된 지도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내 예상대로라면 11시에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매 코스마다 내가 있는 위치를 카톡으로 보내면 구글 맵에서 내 위치를 확인할 것이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산에 오르니,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누군가 숨겨둔 보물을 찾아 나서듯 각 위치에서 지도를 보며 현재 나의 위치와 앞으로 가야 하는 길을 찾아본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같아 보이던 풍경이 어느덧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아 주고, 머리 위로 햇살이 비쳐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주의 소리에 집중한다. 저 멀리서 알 수 없는 어떤 동물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소리, 그 주변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새소리 등 평상시 듣지 못했던, 아니 음악을 듣는다고 해도 알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다.


선생님께서 야간 산행 수업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라 명상을 하진 못했지만,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면 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씀. 그리고 두 손가락을 귀에 대고 가만히 들으면 몸속 혈관으로 피가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고 하셨다. 그때는 듣지 못했지만, 오늘은 들리지 않을까 해서 해본다. 역시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산행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라는 걸. 음악 없이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는 산행이 더 신나는 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등산 놀이에 취해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문수산 정상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현재의 위치와 지도상의 위치를 맞춰보고 내려갈 길도 확인했다.


내려오는 길, 이곳은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관문이었다. 등산 아카데미를 가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그 길 찾기. 이번엔 다를 것이라 다짐한다.


나는 더욱 집중해서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GPS 프로그램까지 펼쳐 놓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몇 가지 코스를 정해둔 지도를 보며 그 위치를 향해 나아가는 나를 보니, 이전과 달라진 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길치가 아니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과 불과 20분 정도의 차이만 났을 뿐,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춰 잘 도착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오르기 위한 과정은 너무나 힘든 여정이기에, 그 힘든 것을 잊기 위해 음악을 듣거나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정리하며 정상으로 향했던 지난날의 나와 지금의 달라진 나의 모습.


등산 아카데미가 나에게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주었다. 등산 아카데미 모든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가르쳐 주신 내용 모두 잘 간직하고 나만의 등산에 사용하며 즐거운 산행 생활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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