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코스 수정 :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by 온결

나는 1박 2일 등산 교육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 과정을 가기 위해 새로운 텐트와 배낭, 침낭까지 많은 준비를 했다. 참석을 망설이던 내가 결심한 유일한 이유는 바로 야간 산행 중 별을 보고 방향 찾는 법을 배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기로 한 바로 전날, 딸이 갑자기 아프고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열은 밤새 오르기를 반복했고, 다음 날 아내는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은 딸에게 코로나라고 하셨다. 그렇게 딸은 1인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날은 딸이 태어나 처음으로 링거를 맞고 입원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내는 딸을 입원시키고 집으로 달려와 필요한 물품을 챙겨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내가 퇴근해 오길 기다리며 딸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딸의 입원으로 인해 나의 1박 2일 산행은 허무하게 물 건너갔다. 퇴근 후 나는 딸 옆에서 함께 생활하며 딸을 돌봐야 했다. 혹시나 아내에게 독감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딸은 밤마다 “집에 가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다”라고 울었고, 나는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함께 게임을 하며 달랬다. 딸이 조금 진정되면 다시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음을 터트리기를 반복했다. 나는 몰래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사다 병원에서 딸을 달래기도 했다.


아내 또한 기말 시험을 며칠 앞두고 이런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터였다. 밤늦게 먹을 도시락과 딸이 좋아하는 컵라면을 들고 달려오는 아내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1박 2일 산행은 완전히 접혔다.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이었는데, 바로 전날 딸이 아플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가장 힘들고 속상한 것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딸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산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다행히 아내가 이해해 주었고, 딸 또한 “아빠가 하고 싶어 하니까 이해하고 기다린다”라고 말해주었다.


허무하게 놓쳐버린 산행이지만, 처음 1박 2일 등산 계획을 들었을 때 나는 참석 여부를 고민했었다. 내 성격상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일정의 첫날은 산 중턱 정자에서 텐트를 치고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단지 배우고 싶은 것이었지만 갈까 말까를 고민하며 한 달 가까이를 망설였다.


결정적 계기는 야간 산행이었다. 우리 기수가 야간 산행한 날, 비와 안개가 끼어 거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런 날은 원칙적으로 산행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간단히 산행을 하며 별을 보고 방향 찾는 법을 알려주기로 하셨다. 나는 그때 ‘그 산행을 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필요한 물품을 급하게 구입하며 준비했다. 준비하면서도 계속 갈까 말까를 망설였지만, 일단 가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준비를 계속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은 심란했는데, 결국 딸이 아픈 상황이 생기면서 산행은 무산되었다. 다른 기수가 다녀온 코스를 단톡방에서 보고, 나는 혼자라도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딸이 퇴원하자, 나는 인터넷으로 코스를 검색하고 지도로 옮겨 거리, 소요 시간, 필요 준비물을 작성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번 코스에서는 우리 집에서 그들이 1박 한 정자까지 이동해 남암산을 지나 돌아오는 일정이라, 아내와 약속한 오전 12시까지 집에 도착하는 것은 어려웠다. 아내의 허락을 받는 것이 관건이었다.


계획은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고, 딸의 병간호로 고생한 나에게 이번만 오후 2시까지 연장해 주었다. 덕분에 혼자만의 등산을 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집을 나섰다. 첫 코스인 폭포수에 도착해 아내에게 GPS로 내 위치를 찍어 보냈다. 폭포수 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동했다. 아내가 시간을 연장해 주었지만, 여전히 시간이 촉박했다. 서둘러 문수산 정상에 올라 하산하며 쉼터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텐트를 치고 1박 한 정자에 도착해 잠시 쉬며 아내에게 내 위치를 알렸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처음 가보는 코스를 지도와 GPS만 보고 찾아가는 나만의 등산이 시작된 것이다. 온 길의 반대 방향에 있는 남암산으로 이동했다. 남암산 가는 길은 생각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고, 높지 않은 산이라 빨리 갈 수 있었다. 경치를 감상하며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는데, 옆 급경사 계단을 보고 ‘저 위가 정상일 것’이라 직감했다.



정상 50미터를 남겨두고 갑자기 경사가 급변했다. 습한 날씨 탓인지 발을 딛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50미터를 30분 동안 어렵게 오르고 도착한 정상은 허탈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 나무로 막혀 있어 경관은 볼 수 없었고, 쉴 의자도 없었다. ‘그래서 아래쪽에 데크를 설치했구나’ 하고 이해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 산을 넘어 내려가는 길에 절 하나를 발견했다. 절을 들러 아내에게 줄 약수를 받는 것이 오늘 최종 목적이었다.


쓰러진 나무 옆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아내에게 내 위치를 보내고, 집에서 가져온 라면을 잘게 부숴 뜨거운 물에 익혀 먹었다. “이거지!” 얼마나 먹고 싶었던 맛인가. 국물에 찬밥 한 덩이를 넣어 비벼 먹고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4시간 만에 지도에서 본 절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의 또 다른 목적, 아내에게 줄 약수가 있는 곳이었다. 도착한 절은 오래된 절이었고,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다. 절을 둘러봐도 약수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스님이 방에서 주무시는가 싶어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20분 정도 더 기다렸지만, 시간이 부족해 절을 떠나야 했다.


오후 1시 40분, 무사히 집에 도착하며 아내와 약속을 지켰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처음 가보는 곳을 지도와 GPS만으로 길을 잃지 않고 혼자 완주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였다. 오늘도 나는 또 다른 나로 레벨 업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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