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란 무엇인가

중니어가 가지면 좋을 능력 08 [거시적 관점]

by 온네리
원하던 조직에 왔지만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다

저는 이직을 한 이후로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렸었습니다. 아무래도, 10대 때부터 꿈꿔왔던 회사에 관한 기대감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인 듯 합니다. 그토록 갈망했던 회사에 재직한다면 더이상 내 커리어에 있어서는 고민이 없고 쭉 바람 잘 날만 있을 것 같았는데, 또다른 고민의 시작이었고 생각보다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 매사 열정 가득한 동료들, 팀원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능력 향상을 위해 힘쓰는 팀장님, 서로 으샤으샤하며 기분 좋은 에너지를 만드는 조직 등등 제가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드라마에서만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고 결국 똑같이 사람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출근하면 바로 퇴근하고 싶어하는 동료들이 있고, 사원이더라도 똑같이 클라이언트 개발을 해야 하며, 팀원 개개인의 능력 향상 보다는 팀조직 자체가 살아남는 법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시야가 달라지다

그렇게 몇 년 지내다가 계속해서 감기처럼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작년 연말에 더 크게 명치를 때리듯 다가왔습니다. 그리고서 평소에 비전에 관한 이야기가 잘 통했던 전회사 이사님과 연말 인사 겸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게 되었는데요.


"이사님, 저 이제 8년차가 되는데 제 연차에 어떤 역량을 더 키워야 할까요?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지났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요... 전 아직 시니어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네리, 원래 준비가 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맡는다는 건 없어. 자식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야.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이 키우는 것에 걱정이 많았는데 결국엔 키우게 되더라고.

일도 그런거야. 그냥 주어지니까 그때부터 하는 거야.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 상황에 맞게 결국 인간은 다 하게 되어 있어. 나도 10년차~12년차 쯔음에 이 회사 본부장을 달았잖아. 내가 준비돼서 한 게 아니야. 내가 의심이 들 땐, 날 믿어주는 선배들을 믿고 그냥 가는 거야.

이제 시니어로 접어들면, 기획서를 더 잘 쓰고 광고주를 더 잘 케어하고 등등 이런 것이 메인이 아니야. '이 회사에 지금 필요로 한 게 뭐지? 내가 시니어로서 어떻게 보탬이 되어줄 수 있지? 이 본부에 필요한 건? 이 팀에 필요한 건?' 계속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조직이 필요로 한 게 무엇이고 시니어 연차로서 어떤 것을 내가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 봐야 해."


제가 이사님으로부터 듣고픈 조언을 질문한 것은 맞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러한 느낌의 답변을 해주시지 않을까? 라고 생각됐던 것이 있습니다.

이제 시니어로서 메인으로 기획서를 잘 쓸 수 있어야 한다든지,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책을 가까이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라든지 등등 그런 이야기 위주로 조언을 들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사님이 말씀주신 것은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조직이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내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지 기민하게 캐치해내야 한다는 것. 이제 정말 시니어-팀장의 직책으로 넘어가기 위한 것들 중 중요한 것은 결국 '조직'을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앞선 에피소드에서 말씀 드린 부분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부분입니다. '팀에서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포지셔닝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결국 이것을 더 확장해서 '회사에서 시니어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팀보다 더 큰 거시적인 개념으로는 '본부', 그리고 '회사'가 있습니다. 물론 팀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거시적인 관점에서 회사에서도 나를 필요로 하고 역량을 알아주겠지만, 현재 우리 본부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회사 차원으로도 각 직급에 요구되는 역량은 무엇인지, 왜 그런 것인지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회사에서 연말 연초마다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무엇인지,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정한 것을 바탕으로 나는 어떻게 내 역량을 키울 수 있고 회사에 어떤 업무를 수행하며 능력을 제공할 것인지 등을 계속해서 고민해보는 것입니다.


저는 이날 이사님과의 대화 이후에 고민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또 다른 목표지향점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는 '회사'를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닌, 보다 더 질적인 부분에서 목표를 두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조직생활이 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며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만큼 더 조직적인 관점에서 이 회사를 바라보고 내 커리어 생활을 바라봐야겠다는 것을 얻었습니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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