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또 다른 얼굴로
기적처럼 만난 첫째를 키우며
나는 세상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알았다.
마치 새로운 색깔 안경을 쓴 사람이 된 듯했다.
이건 아마도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간절함과 용기가 필요한지
몸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지금도 내겐 그 어떤 아이도 가벼운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첫째의 첫돌을 보내면서 아이에게 형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고 또 한 번 더
욕심이 생겼다.
여전히 임신이 힘들었던 나는
둘째를 갖기 위해 다시 난임병원을 오가야 했고,
발걸음은 처음보다 덜 무거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조금 수월하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바람은 한 번에 이루어졌다.
‘기뻐서 눈물이 난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걸,
임신이라는 전화를 또 받고서
나는 그날 울면서 웃으며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첫째 아이가 이렇게 예쁜데 과연
둘째도 예쁠 수 있을까
더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우리 부부에게
둘째는 새로운 매력의 사랑스러움을 알려주며
안도감을 주었다.
첫째와 다른 얼굴로 찾아온 아이는
더 빠르고, 더 웃음이 많고, 용감했다.
그 덕에 나는 아들 엄마가 된 것을 제대로 실감했고,
아이는 내가 30여 년 넘게 잃었던 호탕한
웃음소리를 되찾게 해 주었다.
지금의 지인들이 들으면 절대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웃음기 없는 사람이었다.
첫째가 아들이니 둘째는 딸이면 좋겠다는
어른을 위한 바람과 달리 둘째는 아들이었다.
사실 나에게 성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또 한 명의 자녀가 내게 온다는 게 그저
설레고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둘째를 낳던 날은 울음이 아닌
웃음부터 났나 보다.
그런 내 기분을 알았는지 둘째는 엉뚱한 매력의
표정으로 내게 처음 안겼다.
언젠가 아이에게 이 순간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회복실에 누워서 아기 만나려고 대기하는데 세상에
신생아가 벌써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엄마를 보고
있는 거야? 얼마나 귀엽고 웃겼는지 몰라."
당시 9살이었던 아이는 내게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엄마! 아마 그때 저는 엄마를 보고서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요. 이런 엄마를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예쁘고 심장을 콕콕 찌르는 말을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어찌 들을 수 있었을까?
한 명에서 두 명으로 자녀가 늘어나면서 부모인 나의
사랑 또한 두배로 늘어나 품고 사랑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둘째의 기적을 통해 배웠다.
자녀가 많기 때문에 하나인 사랑을 나누어 여럿에게
준다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마다 다른 사랑과 다른 표현들이 있을 뿐이다.
첫사랑 첫째는 그저 신기하고 기특한 마음이 있다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둘째에게는 긴장과 동시에
항시 웃음이 대기 중이었다.
"어쩜 이렇게 다른 외모와 다른 매력으로
엄마 아빠를 찾아왔니?"
'아들만 둘이라 어떡하냐, 엄마는 딸이 필요한데,
그건 목메달이다'라는 웃긴 말들에
정말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유는
그 말들마저도 내가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기에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평범한 엄마로 육아의 일상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
첫째가 둘째를 질투하며 밀고 때리던 순간,
아이가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게 미안하고 마음 아파서
둘째를 재우고서 한번 더 첫째를 안아주며 울던 순간,
아기띠로 둘째를 업고 첫째를 앞으로 안았던 순간,
어느샌가 두 아이가 붙어서 안고 잠든 모습에 감격해서
몰래 가서 사진 찍었던 순간들,
모두 다 내 눈과 마음에 진하게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그렇게 나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갖기 전 바라던 행복한 엄마의 꿈이 매일
일상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양쪽에서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듣고 번갈아 바라보며
사랑은 줄수록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늘어간다는 걸
삶을 통해 확신했다.
내 마음에 쿵하고 큰 울림을 준 책의 한 구절처럼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깊어질 수 없었을 것이고
덜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이미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한 이 삶에
또 다른 기적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부모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지금처럼 깊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덜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부모다움-최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