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첫사랑

기다림이 가르쳐 준 사랑

by On Rachel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의 일상이

쉽게 금방 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매년 빗나갔고,

어느새 나는 ‘결혼 수년 차’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기엔

아이를 향한 마음이 너무 간절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유명하고 유능한 선생님이 계신

난임병원을 찾아갔다.

나는 그곳에 가기만 하면 답이 있을 줄 알았다.

그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금방 임신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현재의 저체중과 심각한

생리불순으로는 어떤 시술조차 시작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초경 이후로 1년에 한두 번,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생리.

생리 유도 주사를 맞으면 보름 가까이 이어지는

부정출혈. 언제 올지도 모를 생리를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을까요?


“생리가 시작되면 그때 오세요.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날 들었던 길지도 않은 저 말들은 누군가 무심코

던졌던 "너는 자연임신이 안 되는 몸인 거네”라는

말보다 훨씬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에 꽂혔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길, 1호선 전철역

어느 벤치에 털썩 앉아 퇴근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소리 내어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왜 무엇 하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걸까?

나는 이렇게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사람인 걸까?

다른 것들은 비교적 잘 포기해 온 나였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임신이라는 순간, 엄마가 되는 그 순간이 내겐 너무도

간절했다.


그래서 아프고 슬퍼도 다시 일어나서 집으로 힘겹게

돌아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거야!

그러고도 안된다면 그때 내려놓는 거야!'

새벽마다 일어나 운동하고, 감량이 아닌 증량에 맞춘

식사로 챙겨 먹고, 좋다는 영양제들을 먹고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늘 마지막까지 남아서 기도하다 보면 눈물이 나고

그때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저도 엄마가 되고 싶어요."


몇 달이 지났을까. 몸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마음도 함께 자라났다.

서서히 늘어난 몸무게와 함께 자연스럽게 생리가

찾아왔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고,

드디어 선생님은 시험관 시술을 시작해 보자고 했다.

아이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손으로 배에 주사를 놓던 순간들, 수술대에 오르던

시간들이 때로는 서러웠지만 시도조차 할 수 없던 시간을 생각하면서 견뎌냈다.


이식을 하고 12일 뒤, 임신 여부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날.

심장은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살면서 이토록 떨린 적이 있었을까.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무릎을 꿇고 감사하다 말하며

울었다. 기뻐서 우는 게 내 평생 처음이었다.

정말 처음으로, 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태몽을 꾸고, 처음 태동을 느끼고,

불러오는 배를 보며 임부복을 고르던 시간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임산부로서의 순간’이 마침내

내 것이 되었다.


예정일은 크리스마스였다. 살면서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려 본 적이 있었을까?

나는 4월부터 12월을 매일 세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드디어 아이를 출산하던 날,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우리 아이가 태어나는구나.’


눈보다 더 여리고 아름다운 아기를 처음 품에 안고서

반가운 미소가 아닌 울음이 터져버린 나는 그날부터

사랑에 빠졌다. 그동안의 아픔들과 긴 기다림의

시간들이 비로소 의미를 얻은 순간이었고,

내게도 엄마로서의 시간이 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소중한 날이었다.


그날부터 시작된 아이와의 일상은 매일이 감격스럽고

신기했다. 꿈에서도 바랐던 행복한 엄마로서의 시간을

드디어 누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평범한 일상 중 하나이겠지만

아기띠로 아이를 처음 안던 날,

꿈만 같은 그 순간이 내 것이 된 게 감격스러워 선채로 울었었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태어난 이 아이는

내게 엄마라는 이름과 함께 첫사랑을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