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라는 말이 동의 일까?

허락과 강요 사이, 평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동의

by 전온유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예방교육, 특히 또래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동의’의 중요성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강조되는 것이죠. 사실 동의는 청소년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개념입니다. 동의받지 않은 행동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폭력이 성립되는 요건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동의를 ‘허락’의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 상대방에게 허락을 받은 후 실행하는 것, 그래서 “허락을 받았으니 이후의 결과는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동의받았거든요. 그래서 찍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주짓수 놀이 하는데 먼저 물어봤어요. 친구가 그러라고 해서 목 조른 건데 왜요?”

“햄버거 놀이 하기로 그 애도 찬성했어요. 동의받은 거예요.”

“테이저건 놀이, 그 애도 그러라고 했어요. 제 마음대로 한 게 아니에요.”

학교폭력 현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례들입니다.

얼핏 듣기엔 생소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놀이를 가장한 폭력입니다.


사진 찍기: 동의를 받았다고 하지만, 가해자는 그 사진을 성적 합성물로 만들어 유포했습니다.

주짓수 놀이(일명 기절놀이): 주짓수 기술로 친구의 목을 조르는 행위로, 실제로 기절할 때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햄버거 놀이: 피해 아동을 바닥에 눕히고 여러 명이 차곡차곡 올라타 숨을 막히게 하거나, 그 상태에서 신체 민감 부위를 추행하기도 합니다.

테이저건 놀이: 손으로 상대의 신체를 간지럽히듯 괴롭히는 행위로, 피해자는 불쾌감을 느낍니다.


한동안 예방교육에서는 ‘동의’라는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동의 받지 않은 행동은 폭력이다.”

“장난과 폭력은 다르다.”

“너 혼자만 재미있다면 장난이 될 수 없다.”

“불법 촬영 예방은 동의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동의’라는 단어의 표면적인 의미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라는 허락만 받으면 면죄부가 주어진다고 착각한 것이죠.


그러나 동의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그래’라는 대답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동의는 평등한 관계에서만 성립합니다.

불평등한 관계에서의 동의는 사실상 ‘강요’이기 때문입니다.


한 중학교에서 금품 갈취로 상담을 했던 A학생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돈이나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을 뿐, 한번도 강제로 빼앗은 적은 없어요.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피해 학생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A학생보다, A 주변의 불량서클 조직이 무서워서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허락’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진정한 동의가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 강요된 허락이었을 뿐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행위자는 직책이 높은 관리자였는데, 억울함을 호소하며 “나는 언제나 미리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즘 이런 말 하면 성희롱인데, 괜찮지? 너 완전히 내 이상형이야. 사귀자.”

“이렇게 손으로 만지면 큰일 나는데, 봐줄 거지?” (말과 동시에 만짐)

피해자는 안전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사실상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행위자가 깔아놓은 ‘형식적 동의’는 그저 자기합리화였을 뿐입니다.


성인지감수성의 관점에서 ‘동의’란,

위험이나 권력관계, 힘의 불균형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기결정적 선택을 말합니다.

즉, 평등하고 안전한 조건 속에서 자기 주도권을 가지고 내린 결정만이 진정한 동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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