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이 없는 세계에서

by 전온유

요즘 유행한다는 말랑한 카피바라 인형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무심코 손에 쥐었을 뿐인데, 녀석을 꾹 누를 때마다 입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작은 풍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덧 제 마음도 말랑하게 풀리는 기분이 듭니다.


문득 카피바라의 입에서 부풀어 오르는 그것이 '말풍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웹툰 속 주인공들은 늘 머리 위에 말풍선을 달고 삽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한눈에 보이지요.

말풍선의 꼬리가 그 사람을 향해 선명하게 뻗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의 우리에겐 말풍선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말을 할 때마다 허공에 말풍선이 생기고 문자가 선명히 떠오른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지금보다 덜 오해하고, 소중한 진심을 덜 지나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못 들은 척하거나 애써 무시하는 건,

어쩌면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핑계 뒤로 숨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말풍선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더 있습니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을 때였습니다.

긴급출동 기사님이 오셔서 분무기로 비눗물을 뿌리자, 신기하게도 공기가 새는 부분에서만 보글보글 거품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타이어가 말을 하고 있구나.”

나 여기가 아프다고, 여기가 구멍 났다고 외치는 타이어만의 말풍선이었던 셈입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이 더 잘 통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주 어긋나는 곳 역시 그 자리입니다.


잘 들어주는 일, 공감하는 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상대는 나를 향해 수없이 많은 말풍선을 불어 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형태가 없다는 이유로, 혹은 내 마음이 바쁘다는 이유로 제가 그 신호를 놓쳐버렸던 것이겠지요.


연말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마음은 괜히 조금 더 느슨해지고 넉넉해집니다.

내 곁의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을, 어떤 말풍선에 담아 나를 향해 간절히 불어내고 있을까요.


이번 연말에는 그 말풍선이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자세히 상대의 곁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KakaoTalk_20251223_201813143.jpg 말랑한 카피바라 인형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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